EU, 자동차 및 주요 산업 부품 자립 강화 정책의 배경과 파급력
유럽연합(EU)이 자동차 등 산업 부품의 EU 역내 조달 비율을 70%까지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유럽 현지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 및 소재 자립도를 대폭 끌어올리는 것으로, 유럽 자동차 및 부품 산업의 공급망 대전환을 예고한다. 최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가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범역내 생산비중 목표 상향을 본격 논의하고 있으며, 유럽의회 및 주요 회원국들도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EU가 기존 40~60% 수준의 역내 조달률을 대폭 끌어올리고자 하는 정책적 의도는 단기적 공급망 불안 대응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다.
EU의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몇 년간 심화된 공급망 리스크와 미국·중국 등 주요국의 자국 산업 보호주의 강화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실제로 2020년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배터리, 희귀금속 등 첨단 산업 부품의 공급 차질이 심각하게 발생했다. 유럽 각국 완성차 업체들은 주요 부품을 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부터 공급받아왔다. 이로 인해 유사시 생산 중단과 가격 변동성 증대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EU 내에서 ‘전략적 자율성’ 확대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번 정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구조적 변화를 추진하는 일환으로, 단순히 부품 확보 수준을 넘어 원자재 단계부터 생산기술, 친환경 규제 및 산업지원정책까지 포괄적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글로벌 비교 차원에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중국은 ‘쌍순환’전략 등을 통해 일찌감치 자국내 공급망 내재화에 나섰다.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품목 조달에서 북미산 원소재·부품 조달 비율을 대폭 높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이를 충족한 기업에 한해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중국은 희토류 등 전략자원 주요 공급국으로서 ‘공급망 조절권’을 바탕으로 자체 산업생태계를 더욱 강화 중이다. 이에 비하면 EU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자유무역주의에 가까운 개방 노선을 유지해왔으나, 이번 정책전환을 통해 미국·중국과 유사한 보호주의 색채를 일부 가미하며 공급망 주권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번 EU 정책은 자동차 산업뿐만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전력 반도체, 탈탄소 신기술 분야에도 직결된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까지 리튬이온 배터리, 희소금속, 반도체 공급 대부분을 중국, 일본, 한국에 의존해왔으며 각종 탈탄소 규제 강화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정책이 실현되면 유럽 내 신규 공장과 첨단 생산기술 투자가 촉진될 전망이나, 단기적으로는 역내 가격 상승 및 글로벌 공급망 충격도 불가피하다. 부품사·소재사들은 유럽 현지화 압력 속에 공장 이전 및 추가 설비 투자 부담을 안게 되고, 완성차업체들 역시 원가 상승 요인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최근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은 유럽 내 생산확대와 함께, 파트너십 다변화, 소재 국산화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부 EU 회원국은 정책의 급격한 적용에 대한 부작용, 산업경쟁력 저하 등도 우려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모빌리티 전환과 혁신기술 주도권 확보에 대한 기대감이 우세하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자동차, 항공, 우주 등 제조산업의 글로벌 메카였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동아시아의 급부상, 첨단소재 및 배터리 시장 주도권 이동, 고도화된 조립생산체제의 글로벌화로 경쟁력이 일부 약화된 측면이 있다. 최근에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친환경 상용차, 드론, 항공우주 분야까지 부품·소재 국산화 이슈가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인 독일 보쉬(Bosch), 콘티넨탈(Continental) 등은 고부가가치 부품 역내 생산 비중 확대를 목표로 대규모 R&D 투자를 단행 중이다. 드론, UAM(도심항공교통), 우주항공 분야에서도 동일한 ‘자립형 공급망 구조’ 모색이 주요 화두다.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경우, 유럽은 친환경·전동화, 자율주행, 항공우주 혁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다만, 역내 인력·기술 부족, 글로벌 가격경쟁 심화, 아시아 수요·공급 연계 약화 등 잠재적 위험 역시 상존한다. 향후 EU 집행위원회, 국가별 정부, 업계·노동조합 간의 이해관계 조율과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 등 후속조치가 정책 성공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국제적인 기술·산업 표준화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번 EU 부품 조달 정책은 자동차를 시작으로 산업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 고다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