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간 재산범죄 처벌 면제’ 폐지, 사적 영역과 공동체 윤리 간 경계 재정의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친족간 재산범죄 처벌 면제’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정을 둘러싼 논의는 한국형 가족제도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 그리고 형법의 근간에 흐르는 사적 자치의 원칙과 형벌권의 개입 범위에 대한 근원적 문제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해당 법조항은 오랜 기간 가족, 즉 친족 내에서 발생한 절도·사기 등 재산범죄에 대해 형사처벌을 면제해주던 관습적 규범의 근거였다. 구체적으로 형법 제328조는 배우자, 직계혈족, 동거 친족 등 일정 범위 내의 친족 간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 처벌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해왔다. 이 제도적 장치는 ‘가정 내 문제는 사법권이 아닌 당사자간 해결할 문제’라는 가부장적 질서의 잔재와도 맞닿아 있다. 국회 소위의 결정을 계기로, 이제 한국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며, 반대로 국가가 어디까지 공적인 개입을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직면했다.
이 법의 운용 실태를 살펴보면, 친족 간 재산범죄가 법적으로 무죄 취급되면서 실제 피해 발생 시 법적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 이혼 과정, 상속 분쟁, 근친 관계 해체 등 복잡한 가족 내 재산 다툼에서는 형법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이를테면 직계존비속이 부모나 자녀의 계좌에서 무단 인출한 사실이 명백해도 현행법상 형사처벌이 어렵거나, 피해자가 오히려 사회적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반복됐다. 이번 조항 폐지는 점점 다변화·해체되는 가족구조, 재산권 보호의 평등원칙, 금융거래의 투명성과도 연결된다.
다수의 국회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해당 조항의 존치가 사회적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공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여러 단체들은 친족 범죄 면책이 사실상 범죄 온상이 될 수 있음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실제 동거 중인 배우자나 부모, 자녀 등 밀접한 가족 내에서 오히려 경제적 약자가 범죄에 노출되는 사례는 늘고 있으며, 이 경우 피해당사자가 법적 지원을 요청해도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적 구제의 문이 닫혔다.
그럼에도 반대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법의 보호를 가족 간 다툼, 예를 들어 일시적 분노에서 비롯된 행위까지 무차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또한 대한민국의 가족문화, 특히 동거와 부양의 전통적 윤리에 기초할 때 형법의 경직된 개입이 오히려 가족 해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부양의무의 가치 붕괴, 세대 갈등의 심화, 소송 남발 등도 일부 우려되는 사회적 파장이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조차 약자의 인권 보호와 재산권 보장이 새 시대의 윤리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흐름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독일·프랑스·일본 등 대다수 유사법계를 채택한 국가들도 친족 간 범죄 면책 조항을 이미 폐지하거나 대폭 제한해왔다. 유엔 인권 이사회 역시 가족 내부의 폐쇄성으로 인한 인권 침해 가능성을 꾸준히 주시하며, 국가가 일정 부분 공적 개입을 확대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2020년 이후 한국 각급 법원에서도 가족 내 경제범죄에 대한 피해 회복 요구가 꾸준히 늘었고, 1인·비혼 가구 중심의 가족구조 변화는 법제 개편의 당위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2023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응답자 중 71.2%가 ‘부모·형제간 재산범죄도 공적 처벌 필요’에 동의하고 있어 사회 인식도 변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와 같은 조항의 폐지는 법리적 변화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전환을 의미한다. 이제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던 시대를 넘어서, 약자가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확보가 절실하다. 또한 고령화 사회와 맞물려 세대 간의 재산갈등이 더욱 예민해지는 현재, 법의 공정성 회복이 절실한 과제임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사생활의 자치와 가족해체에 대한 우려는 앞으로의 법 집행 과정에서 충분히 제도적으로 논의되어야 하며, 예방적 차원의 복지적·상담적 지원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친족간 재산범죄 처벌 면제’ 폐지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 그리고 가족이라는 집단을 넘어선 사회적 정의 실현이라는 양대 가치를 조화롭게 아우르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남은 것은 사회 각 부문이 새로운 기준 위에서 재산권과 인권, 가족공동체의 윤리를 다시 설계해가는 일이며, 앞으로의 사법부와 입법부의 신중한 접근, 그리고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와 감시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