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야구, ‘실격’이라는 언어 — 문화와 규정, 그 격차를 해부한다

북한 야구에서 아웃(OUT)을 ‘실격’이라 표기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번역상의 차원이 아니라, 언어의 뿌리와 스포츠 문화가 맞닿는 특이점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5년 현재 북한 야구협회 및 대외 홍보용 자료에서 ‘아웃’ 대신 ‘실격’이라는 순우리말식 표현이 쓰이고 있다. 이는 남한의 표준적인 야구 용어 체계와는 물론, 해외 모든 야구계의 용례와 대조되는 현상이다. 북한의 이 같은 독자적 용어 선택은 단순한 스포츠 용어 개정이 아닌, 체제 특유의 언어 규범 강화 — ‘우리 식’ 문화 정체성 확립 프로젝트와도 맥을 같이 한다. 현장감 있게 살펴보면, 21세기의 국제 야구무대에서 북한 출신 선수나 심판이 다른 리그 또는 대회에서 발표나 판정 용어 사용에 혼선을 빚을 가능성도 높다는 판단이 든다. 실제로 북한이 최근 국제 행사의 스포츠 용어를 의도적으로 한글화하거나 독자화하는 경향은 야구뿐 아니라 체육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북한 스포츠의 언어적 독자성은 사회과학적 접근에서 자주 연구되어 왔다. 예를 들어 ‘스포츠 용어의 규범화’라는 책에서는 북한 출신 전 국가대학체육원의 교수들이 제시한 용어나 판정 규정에서, 공통적으로 일본식·미국식 스포츠 용어를 배제하려는 근본주의적 흐름이 관찰된다. 야구는 그 핵심에 있다. ‘아웃’(OUT)이란 용어는 본래 미국 스포츠에서 비롯돼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유입된 것이다. 반면 북한은 1950년대부터 자국의 공용어체계에 맞춰 심판어와 경기 규칙 용어를 ‘바꿔쓰기’ 시작했다. 현재 북한 스크립트에는 ‘여지없음’, ‘실격’, ‘배제’ 등 극단적으로 의역된 단어가 경기장 현장에서 선수와 심판, 야구팬 간 빠르게 공유된다. 남북 분단 이후 70여 년간 스포츠 용어가 각자의 진화의 길을 걷게 된 배경, 그리고 그 흐름의 단면에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스포츠를 통한 문화 주권의 강조다.

한편, 실제 경기 현장에서 ‘실격’이라는 용어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판단의 명료성이 떨어질 때가 있다. 야구에서 ‘실격’은 엄밀히 말해 규정 위반이나 경기 중 심판에 의해 퇴장(Disqualification)에 해당하는 단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3아웃’과 별개로 단순 타자 아웃에도 ‘실격’의 어감을 덧씌운다. 이는 경기 흐름 묘사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가령, 남한 혹은 국제 야구 중계팀이 ‘3아웃으로 이닝 종료’라고 말할 때, 북한은 ‘3차례 실격으로 이닝 종료’라는 식의 나레이션을 쓴다. 이는 정교하게 분화된 베이스볼 규칙 체계와 충돌하며, 검증된 선수 퍼포먼스 기록이나 데이터를 명확히 하기 어렵게 한다. 실제 2025년 만수대경기장 현장에서는 방청객과 심판, 선수가 ‘실격=아웃’이라고 직관적으로 인식하지만, 야구적 디테일이나 경기의 박진감을 전하는 데는 용어의 명확성이 절실하다.

이 같은 북한식 용어 채택은 단순한 국적 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정책적으로 명백히 설계된 결정이라 볼 수 있다. 북한은 최근 국제 체육계와의 교류 확대를 시도하면서 ‘조선식 민족체육 정체성’ 고수를 반복적으로 선언했다. 실제로 2022년 동북아 체육교류회 공식자료 및 2023년 조선중앙방송의 경기중계에서는 모두 ‘실격’이라는 낱말을 사용했다. 이는 북한 야구의 국제 규칙 도입 움직임과 병행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용어의 폐쇄성’, ‘글로벌 표준과의 괴리’라는 비판도 피하지 못한다. 남북 스포츠 교류나 국제대회 참여 시 ‘아웃=실격’이라는 번역상의 간극이 선수, 심판, 기록원의 협업체계에 혼선을 줄 수 있음은 명확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남한, 일본, 미국, 대만 등 야구 강국과의 합동 워크숍 및 아마추어 리그 교류행사에서 실제로 수차례 드러난 바 있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복합적인 규정, 빠른 경기 전개, 신속한 의사소통이 중요한 종목이다. ‘아웃’ 또는 ‘실격’이라는 한 단어의 의미 차이가 경기장 내외의 소통 구조에 얼마나 심대한 파장을 일으키는지는, 실제 기록지 및 심판 회의록, 선수 코칭 프린트 등 직접적 데이터를 통해 입증된다. 만약 한일 합동 아마추어 리그에서 북한 용어가 적용된다면, 심판 및 기록원 매뉴얼까지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하며, 선수들은 기존의 규칙 습득을 다시 시도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직면하게 된다. 2024년 이후 남한-북한-일본 3국의 고교야구 친선전 추진 논의 과정에서, 경기 용어와 규정 번역 문제는 최우선 쟁점으로 도출된 바 있다.

선수 퍼포먼스 분석 측면에서 볼 때도, ‘실격’이라는 표현이 갖는 한계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타자가 루상의 주자를 두고 볼넷 또는 몸에 맞는 볼로 3루까지 진루하는 경우 ‘실격’을 적용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아웃’은 야구 수비의 다양한 변수 — 예를 들어 병살, 삼진, 태그아웃, 포스아웃, 플라이아웃 등 — 모두로 귀결되는 결과다. 그러나 ‘실격’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각 상황의 미묘한 차이나 기술적 전략, 경기의 맥락을 드러내기 어렵다. 이는 현장의 역동성, 선수들의 초단위 전술 구사력, 감독의 작전 변화 등 ‘현장감 있게’ 중계되어야 할 요소들을 집약적으로 암시해준다.

야구는 세계화의 길을 걷고 있다. 용어 하나의 미묘한 차이가 단순히 그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는 기록과 정보, 전술과 전술이 충돌하고, 이러한 모든 흐름이 경기판 위에서 선수들의 퍼포먼스, 코칭스태프의 의사소통, 심판의 판정속도와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북한의 ‘실격=아웃’ 도입이 가져올 파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향후 스포츠 남북 교류현장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제야구 무대에서 점차 더 선명해질 것이다. 언어는 경기력의 한 축이다. 용어 표준화와 규범을 통한 상호 이해와 교류가, 오늘의 야구에서 더없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다시금 환기한다. — 한지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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