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도 목표’는 소리만 요란한 신기루인가―온난화 대응의 구조적 실패 연대기
지금 인류의 난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묵직한 문장이 있다. “여태 온난화도 못 막았는데…기온 낮춰야 달성 가능한 ‘1.5도 목표’”. 2026년 9월, 국제사회와 과학계 전반을 아우르는 화두는 더 이상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미 억제가 실패로 드러난 현상을 토대로, 이제는 아예 ‘기온을 되돌리는(또는 낮추는)’ 상상력이 거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조적인 책임과 기만, 그리고 현실적 불가능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1.5도 목표는 인류 최후의 타협안으로 등장했다. 평균 지구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그야말로 벼랑 끝 선언. 하지만 2020년대 중반, 과학계와 국제기구, 각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와 위성관측 데이터가 단호히 드러내는 현실은 다르다. 2026년 중반에 이르러 이미 1.5도 상승이 눈앞이고, 일시적 돌파(overshoot)까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중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5년 내 1.5도 선이 한 번 이상 뚫릴 확률을 80% 이상으로 본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전례 없는 고점이고, 중국ㆍ인도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 다수가 배출의 가속페달을 계속 밟고 있다. 이 국면에서 “이제 기온을 낮춰야 한다”는 메시지는 교과서 속 ‘희망’이 아니라, 사실상 구조적 실패와 위선의 고발장이다.
이제 ‘기온을 낮춘다’는 말은 잠정적 포기 선언에 가까워졌다. 이론적으로는 기후 엔지니어링, 태양광 반사, 대기 중 이산화탄소 직접 포집 및 제거(DAC) 등이 논의된다. 하지만 타임라인을 따라가보자. 2020년대 초엔 각국이 넷제로 선언에 열을 올렸다. EU는 기후중립을 2050년 목표로 천명했고, 미국도 바이든 정부 들어 이를 적극 표방했다. 한국 역시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을 내걸며 국격을 높인다고 선언. 하지만 정책 이행은 여전히 구멍 투성이다. 석탄화력 퇴출 일정은 지연되고, 자동차ㆍ조선 등 주력산업은 감축 목표와 기업생존 논리 사이에 흔들린다. 기후정의, 탄소세 등 논쟁은 오히려 정치적 혼란만 증폭시켰다. 거대한 글로벌 타협(파리협약)은 사실상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고, 각국은 단기 경제논리에 발목이 잡혔다. 구조적 비리와 책임회피가 반복되는 글로벌 정경유착의 전형이다.
과학컷팅에서는 더 냉정하다. 탄소중립을 외쳐도 실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기는커녕 후진국 중심으로 더 늘고 있고, 에너지 공급망 위기(러-우 전쟁, 중국의 희토류ㆍ태양광 공급망 점령 등)가 호출할 때마다 친환경 정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2023~2026년 연속 폭염, 산불, 가뭄 등 역대급 기후재해가 전 세계를 강타했지만, 각국의 대응체계는 여전히 기껏해야 일회성 결의안, 이미지 정치, 보여주기식 보조금에 매달렸다. 도심 녹화, 전기차 전환, 신재생에너지 확대… 겉으로 화려하지만, 배출량 격차나 근본적 탄소순환체계 개선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지난 3년간의 구조적 흐름을 다시 짚는다. 2024년 5월, 유럽의회는 2030년까지 메탄배출 총량을 30%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자 결국 감축 규모를 슬그머니 후퇴시켰다. 2025년 미국 대선에서는 기후의제가 일종의 선거용 이슈로 소모됐다. 한국에서도 탄소제로 예산이 삭감되고, 녹색산업 정책엔 고질적 로비와 특혜, 관료집단의 무사안일이 발목을 잡는다. 뉴스와 사회를 따라가면, ‘온실가스 다이어트’는 실질적 감축보다 정치권의 이미지 메이킹에 더 가깝다.
이쯤 되면, “온난화 억제”가 아니라 “기온을 낮추자”는 외침, 즉 역(逆)온난화 대책이라는 신종 구호에는 깊은 불신이 깔릴 수밖에 없다. 대중은 점점 기후담론에 냉소하고, 정치권은 기획된 희생양(화석연료ㆍ에너지 빈곤계층 등)을 내세워 미래를 늦추거나 책임을 분산시킨다. 그 사이 글로벌 대기업ㆍ에너지 카르텔은 계열 생존을 명분 삼아 투자보조금ㆍ탄소배출권 장사로 남몰래 이득을 취한다. 국제사회의 솔루션은 오히려 새로운 갈등, 기술 의존, 경제적 불평등만 키우고 있다.
‘1.5도 목표’가 현실에서 유효하려면, 선언적 ‘감축 약속’이 아니라 국가별 산업구조 재설계, 에너지 거버넌스 재구성,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투명 감사와 시민 참여가 실질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현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실패에 대한 구조적 자기반성과 책임자 추궁 없이 신기루 같은 ‘기온 낮추기’ 환상 속에 빠지는 집단적 방임이다. 대중의 체념이 아닌, 탐사적 감시와 권력계층의 책임 귀속만이 절박하게 필요한 국면. 기후위기의 본질이 ‘정치-경제-과학’ 삼중구조의 위선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덤덤한 일상 속 익숙하게 반복되는 ‘1.5도 목표’ 타령. 하지만 그 뒤편에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자, 면피성 도입에 눈먼 관료집단, 감축 부담을 서민에 떠넘기는 고질적 기득권 구조가 빼곡하다. 뉴스를 읽는 시민 개개인의 분노와 체념,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듯 반복되는 정책쇼가 온난화보다 더한 냉소주의를 키운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한국사회가 지금 직면한 기후위기 ‘진실’의 민낯이다.
— 강서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