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영화 리뷰 — 시선의 교차, 그 끝에 남는 잔상

극장 내부의 공기는 한여름 무더위 속 거리보다 묘하게 더 매캐하다. 관객의 한숨과 팝콘의 바스락거림이 교차하는 그 어둠 속, 스크린에 점차 맺혀드는 이미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신작 영화 ‘눈동자’(감독 김지원)는 상영 시작부터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흐를 때까지 시선을 결박시킨다.

서울 도심, 푸른 네온이 번지는 저녁. 카메라는 빗방울을 머금은 유리창 너머 주인공 수진(장윤서 분)의 눈동자를 따라간다. 영화의 화두이자 관객의 질문 지점. ‘관찰’과 ‘응시’, 그 사이 긴장과 위태로움은 리얼타임의 속도감으로 관객 앞에 툭 던져진다. 화면 곳곳에 포진된 보도블록의 균열, 지하철 조명의 깜빡임, 그리고 반복적으로 클로즈업되는 인물의 동공은 극의 흐름 속에서 서늘한 리듬을 만든다.

감각적 영상이 일상의 디테일을 파고든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청년, 노상 카페의 바리케이드,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광고 사이의 간극. 김 감독은 원 시점과 카메라 시점, 그리고 관객의 시점을 집요하게 교차편집한다. 그 방식은 어느 순간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진실’마저도 대면하게 만든다. 영화의 메인 플롯은 실종된 소녀의 행방을 좇는 심리 스릴러를 기본으로 하지만, 장르적 재치와 미학적 치장보다는 ‘보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숙고가 중심을 잡는다. 감독이 선택한 장면운영은 사실적인 무채색 조명과 현장음, 그리고 의도적으로 덜 완성된 듯한 인서트 컷들로 현장성을 강조한다. 익숙한 도시 풍경은 카메라 한뼘 뒤, 관객 뒤통수에서 쏘아대는 서늘한 시선으로 변주된다.

극 초반, 기자가 목격한 현장 — 8회차 시사회, 객석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게 영화냐’는 중얼거림은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장면 한 장면 겹겹이 쌓여가면서 ‘시선’의 층위가 드러난다. 관객은 자신의 시선 역시 편향되어 있을 수 있음에 무력해진다. 문화 평론가들도 이미 고개를 갸웃했다. ‘눈동자’의 힘은 촘촘한 심리 묘사에 있다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현미경처럼 들이대는 방식에 있다. 미디어아트적 구조와 접점을 이루면서도, 감정의 동요 역시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늘어진다. 실종 소녀의 그림자가 골목을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 누구의 눈으로 이 사건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주요 배우들의 연기 역시 현장감이 생생하다. 장윤서의 붉은 눈동자, 신경질적으로 떨리는 입꼬리가 카메라에 포착될 때마다 현장의 공기가 섬뜩해진다. 조연 강동민(형사 역)의 거친 숨소리, 잠깐 지나치는 노숙자의 건조한 독백까지. 마치 도심의 cctv가 사람들의 내면을 훔쳐보고, 관객 자신이 눈 밑의 불안과 분노를 들켜버린 듯한 기묘함이 스멀스멀 번진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내내 ‘답’을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마리로 제공되는 장면과 대사는 ‘눈동자’를 응시하라는 명령이면서 동시에 관객이 내면적으로 갖고 있는 선입견을 흔든다.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 갑작스레 전환되는 시점과 분위기 속에서 관객 자신도 스토리의 일부분이 돼버린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이어져 온 ‘파운드 푸티지’ 및 ‘시점 체험’ 영화들과의 비교에서도 두드러진다. 미장센과 사운드가 마치 자연스러운 현장 리포트처럼 느껴지도록 설계됐고, 누구도 죄책감과 피로감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외 영화제 평단 반응도 엇갈렸다. 뉴욕 필름포럼은 “도시 현실의 딜레마를 눈의 언어로 그려내는 실험”이라고 평했고, 베를린 비평가들은 “관객의 눈썹 사이 갈등을 기어이 발화시킨다”며 불편하다는 평을 남겼다. 이는 곧 국내 관객의 싸늘한 첫 반응과도 연결된다. ‘보고 있지만 본 게 아니다’는 시선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렇다면 ‘눈동자’가 던지는 핵심 화두는 무엇인가. 범죄 트릭의 진부함, 인물 심리의 직접성이 아닌, 우리의 ‘보는 방식’ 자체가 불완전하고 피상적이란 자각. 기자는 현장에서 스크린을 쳐다보는 수십 명의 눈동자를 하나하나 관찰한다. 영화와 관객, 그리고 그 너머의 또 다른 관찰자가 서로를 응시하는 역설적 구조. 동공에 들어온 마지막 프레임이 잔상으로 남는 순간, 관객 모두가 무언가에 노출돼 있다는 실존적 불편과 마주한다.

짧은 시간 내 여러 관객 인터뷰까지 시도했지만, 대부분 “좀 몽롱했다”, “뭘 봤는지 모르겠다”, “볼수록 찝찝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그 ‘찝찝함’이 영화의 실질적 성과일지도 모른다. 편집과 조명, 인서트의 서늘함이 도심 풍경의 익숙함을 서서히 좀먹고, 관객 스스로 시선의 주체와 대상을 바꿔치기하도록 밀어붙인다. 쉽게 제공하는 합의점, 뻔한 결말이 없는 영화의 용기. ‘눈동자’는 관객의 마음 한복판에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무엇을, 누구를, 왜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필름의 마지막 컷 — 흔들리는 동공이 스크린을 채우는 그 순간, 기자 역시 한 명의 관객일 뿐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영화관을 나서며 등 뒤로 쏟아지는 야경의 조명, 그리고 수백 개의 눈동자가 스쳐가는 도시의 심연 한가운데, 오늘 ‘눈동자’를 본 관객만이 느꼈을 파장이 번져간다.

백하린 ([email protecte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