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식탁, 울산남구가족센터가 이어주는 다문화가정의 작은 온기
초가을 저녁봄처럼 바람이 부드럽던 어느 날, 울산 남구가족센터에서 문을 연 ‘다정한 식탁’ 프로젝트는 그저 한 끼 식사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곳은 다문화 가정의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고향의 음식 냄새와 타국의 따스한 정을 함께 곁들여, 삶의 이야기와 웃음을 건네는 작은 축제의 공간이었다. 센터 안 밝은 조명 아래 테이블에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쑥스럼과 설렘을 오가며 조심히 한 숟가락씩 베트남식 볶음국수를 덜고, 옆자리 아빠가 고수의 향을 신기하듯 맡아본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의 온기가 낯설지 않은 미소로 번지던 순간, 다문화라는 단어는 갑자기 마음에서 멀어지고 모두가 또 다른 가족이 된다.
울산 남구가족센터는 해외 출신 주민들의 한국 정착을 돕고자 다양한 형태의 식문화 지원 사업을 펼쳐왔다.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마련된 ‘다정한 식탁’은 그 한가운데서 운영되고 있다. 단순한 식혜와 김밥을 나누는 수준이 아니라, 각 가정의 대표 요리를 함께 준비하고 서로에게 재료와 조리법, 음식을 둘러싼 추억까지 전하는 온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현장에선 우즈베키스탄 출신 엄마가 사마르칸트식 플로프를 만들며 쌀을 부드럽게 볶았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앞세워 할랄 치킨 커리를 조심스레 데웠다. 한국인 옆집 할머니도 초대받아, 자신의 시래기국을 나누며 손자 손녀처럼 아이들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쳤다. 식탁 위에선 언어가 다르고, 조리법이 달라 머쓱했지만, 금방 무너진 국경선은 가까운 이웃의 미소로 서로에게 흘러갔다.
문화체험, 언어교실 등이 흔한 다문화 지원 사업과 달리, ‘다정한 식탁’은 진짜 일상에서 우러나는 교류를 선택했다. 단순히 한국 요리를 소개하는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페루의 세비체, 미얀마의 딴툰, 러시아의 올리비에 샐러드 등 각 가정의 음식과 사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내놓으며 자신감을 찾고, 누군가의 음식을 맛보면서 조심스레 질문을 건넨다. ‘이거는 고향에선 언제 먹나요?’ ‘매운 고추도 넣나요?’ 이런 대화가 무심한 오후를 물들이면, 아이들은 벌써 어른들 틈에 앉아 친구가 되어 있다. 어떤 엄마는 “밥상머리에서만큼은 늘 집 생각이 나 슬펐는데, 오늘은 마주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움조차 덜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현장에는 지역 자원봉사자와 요리강사, 이웃 주민들까지 어우러져 사소한 틈까지 메워준다. 시장에서 구한 낯선 향신료를 같이 맡아보고, 그 속에 담긴 조국의 추억을 들려준다. 한국 음식이 익숙한 가족이 서툰 손으로 라오스 전통 쌀국수를 따라 볶기도 한다. 때론 어색해 멈칫하지만, 이방의 맛을 배워가는 서로의 눈빛엔 유난히 애틋함이 덧입혀진다. 남구가족센터의 운영진은 ‘음식은 문화의 첫걸음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큰 위로다. 밥상 앞에서 나누는 눈빛 하나만큼 가까워질 기회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프로그램은 결혼이주민의 국내 정착을 돕고, 2세대 아이들에게 다양성이란 단어가 가진 부드러운 힘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한국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졌지만, 울산 남구의 ‘다정한 식탁’은 지역 공동체의 이야기를 살뜰히 담아낸 점에서 유독 특별하다. 대구·광주 등 타지역 다문화 네트워크는 요리 교실과 문화축제 위주로 프로그램을 소화했으나, 남구가족센터처럼 마을 주민과 함께 메뉴를 고르고, 장을 보고, 식재료의 스토리까지 나누는 방식은 드물다. 소박하지만 차근차근 쌓아올린 만남과 대화 덕에, 매회 자리를 찾는 가족 사이는 점점 가까워진다. 각국 음식을 번갈아 시식하면서, 서로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터놓는 모습은 지구 반대편의 고향도 이웃처럼 느끼게 한다.
센터 담당자는 “식탁이라는 공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장 쉽게 엮을 수 있는 매개체였다. 오늘 함께 먹었던 음식이 내일은 추억이 되고, 다정이라는 이름이 오랜 우정이 되어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다정한 식탁들의 경험은, 편견 없는 지역 커뮤니티의 미래상을 부드럽게 비추는 듯하다. 서로의 색과 향이 밥상에서 흩어질 때, 한 켠엔 여전히 쑥스러운 차림새지만, 그 속에 깃든 배려와 환대의 온기는 결코 작지 않다. 다문화가정에겐 고향을, 이웃에게는 새로운 친구를 선물한 식탁, 앞으로도 이 도시의 저녁이 더욱 깊고 다채로워지길 기대하게 된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