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AI는 초안까지만’이라는 경계 – 인간 성장의 자리 놓치지 않으려면

어느 가을 저녁, 2학년 교실에 조용히 퍼진 시끌벅적한 소리. “선생님, 이거 AI로 써봤는데요…” 누군가 자신의 과제 초안을 펼쳐 보인다. 처음엔 신기함과 재미가 앞서지만, 반복되는 생성 결과에 점점 깊은 고민이 일어난다. ‘AI가 해주는 답만 붙잡고 있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2026년, 초중등 교실 안팎에서 이런 순간들이 늘고 있다. 바로 이희정 경남교육청 장학사의 ‘AI는 초안까지만’이라는 제언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AI의 도움으로 과제를 더 쉽고 빠르게 완성하지만, 정작 스스로의 생각과 성장의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지 선생님들은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교육현장에 AI가 흘러들어온 건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정부와 각 지자체, 그리고 여러 사교육 업체들이 일제히 AI 학습보조 도구를 선보였고, 학생과 교사 모두 편리함 속에 익숙해졌다. 진리처럼 떠돈 말, ‘AI로 더 똑똑해질 수 있다.’ 하지만 사회 각계, 특히 학교 현장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생각하는 법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새로운 고민이 번지고 있다. 실제로 이 장학사는 아이들이 “AI 챗봇이 써준 글이 내가 쓴 글이 맞나요?”라고 묻는 경험을 적었다. 뜨끔한 교사들도, 당황스러운 학부모들도 있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가치 있는 성장 기회를 줄 수 있을지, 우리 모두가 묻는 시대다.

사례들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예를 들어 경남 고성의 한 중학교에서는 AI가 작성한 소논문보다, 밤새 자신의 목소리로 쓴 거칠고 서툰 초안이 더 깊은 토론과 피드백을 이끌어냈다. 수학 교육 현장에서도 ‘AI 풀이’에 의존한 채 핵심 원리를 놓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오류를 짚으며 직접 고쳐보는 과정에서 진짜 실력을 채워나갔다. 반복되는 AI 초안 활용에 물든 교실의 한편에는, 여전히 콜콜 자신의 열정으로 글을 적는 아이와 학생이 있다. 이 장학사는 그런 과정을 “자신의 삶에 애를 태우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AI 활용의 장점이 무시될 순 없다. 자유로운 자료 검색, 빠른 편집 능력, 드넓은 정보의 바다로 누구나 쉽게 항해할 수 있는 환경은 새로운 세대의 큰 무기다. 그러나 ‘AI가 모든 해답을 준다’는 환상은 오히려 창의력 약화, 책임 인식 저하, 자기성찰 능력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교육심리학자 황유진 교수는 “AI는 ‘함께 쓰는 연장’일 뿐, 사용자의 비판적 사고와 주체적 선택 없이는 그 가치가 반감된다”고 지적했다. 교육학계도 ‘AI 초안 – 인간의 수정과 비판’이라는 이중 체계의 지혜로운 병행이 필수라 조언한다.

가장 민감한 부분은 바로 ‘자율성’과 ‘윤리성’ 문제다. 초안 생성에 AI를 적극 활용하다 보면,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표절·대필이라는 회색지대를 밟게 되기도 한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AI로 글을 써오길래, 자신의 생각 한 문장을 추가로 요구했더니, 의외로 망설이고 힘들어하더라”며 우려를 밝혔다. 손 쉽고 빠른 답을 내주는 AI와 달리, 사유하는 인간만이 느끼는 ‘고민의 값진 시간’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셈이다. 이른바 ‘AI 초안까지만, 그 이후는 인간의 몫’이라는 원칙이 절실해지는 이유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직접 만나는 선생님들은 일상의 감정선이 가장 크게 요동치는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AI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수줍게 자신만의 표현을 찾는 시간, 생각이 부족하다고 느껴 남몰래 울먹이는 아이들. 그 곁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어른의 역할은 예전보다 훨씬 중요하다. 인간의 다정함, 차가운 판단을 동시에 갖춘 ‘동행자’로서, 선생님들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임을 실감한다.

그렇다면 학교와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장학사는 ‘AI 결과물을 함께 토론하고, 내 생각을 1~2줄이라도 꼭 써보게 하는 것’을 추천한다. 학부모의 품에서도 “AI가 낸 답이 아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뭐니?”라는 질문이 오간다면, 기술 시대에도 사유력 있는 아이로 키워낼 수 있다는 믿음이 싹튼다. 최근 사회 각지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강화와 ‘비판적 읽기‧쓰기’ 훈련이 열풍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해외 여러 교육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AI 기반 에세이 제출을 금지하거나, 교수자 주도 하의 AI 사용 가이드를 엄격히 두고 있다. 유럽 북부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AI로 생성된 글’을 학생들이 직접 감별·수정하는 자체 실험 활동을 도입해, 오히려 자기주도력과 바른 윤리의식을 키우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다양한 시도와 논의를 현실에 맞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술의 발전은 멈출 수 없고, 아이들은 점점 더 새로운 도구들과 자란다. 그러나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성장의 시간, 깊은 사유와 땀의 과정만은 결코 사라져선 안 된다. AI 초안은 그저 시작점일 뿐, 그 너머에서 누가 더 뜨겁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느냐가 결국엔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는 법. 이 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어른들의 묵직한 질문과 작은 실천이 빛나는 시대다.

이제 어른과 아이 모두가 함께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서 있다. 질문하는 힘, 자기 목소리로 다시 쓰는 용기, 그리고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을 잃지 않는 교육. 그것이 AI 시대,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따뜻한 숙제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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