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교육, 섬의 경계를 넘어 사람 중심 혁신에 도전한다
제주도의 학교 교실 풍경은 오늘도 다르지 않다. 마을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통학하는 학생, 멀리 서울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입시설명회를 다녀오는 부모,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도생하는 교사들. 섬이라는 물리적 경계가 만드는 교육의 틈, 이 아픈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들이 최근 ‘교육격차’에 대해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제주 지역 고교생의 수도권 대학 진학률은 전국 평균보다 5% 이상 낮았다. 초등 저학년 독서·수학 진단평가 점수 또한 전국 최하위권. ‘관광지 제주’라는 인식 아래 감춰진, 아이 키우기 힘든 현실에 대해 도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감을 표해왔다. 단순 학교시설이나 인터넷망의 문제만이 아니다. 수도권 학원과 사교육 정보, 진로 콘텐츠 접근성, 지역 교육청의 예산·인력 제약까지. 현장 교사들의 증언은 더욱 절박하다. 삼양초 김진수 교사는 이렇게 토로했다. “동네 작은 도서관 하나 유지하기도 어렵고, 진로체험은 인터넷 영상에만 의존합니다.” 한편 도심의 사립초 학부모 최숙희 씨는 “아이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서울로 전학을 가야 하지 않을까, 늘 고민이다”라고 털어놓았다. 교육격차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손길마다 ‘배려의 온도’에는 차이가 없다. 섬, 농어촌, 도심, 어느 한 곳에서도 학습권이 불평등하게 다뤄져선 안 된다는 원칙은 불변의 진리다. 제주도교육청은 이런 현장의 절박함에 응답하려는 첫 걸음으로 ‘교육혁신선도지역’ 추진에 나섰다. 혁신선도사업은 하드웨어 보강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반 없는 대책이 아닌, 직접 현장의 사람들을 참여시켜 설계하는 ‘풀뿌리 모델’이다. 마을교육공동체, 교사-학부모 네트워크가 중심이 되어 교육과정 재설계, 교실 수업 혁신, 온라인-오프라인 진로교육 통합이 본격화된다. 이 과정에서 제주대, 도내 기업, 서울·수도권 협력교들이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전국에서 제주처럼 ‘거리’와 ‘기회의 격차’를 넘어서려는 지방자치단체 움직임은 드물다. 경남, 전북 등 일부 도농복합 지역이 비슷한 혁신 모델을 시도했으나, 인구 유출과 예산 편중 등으로 지속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제주도의 도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행정과 현장이 손잡고 ‘묻는 교육, 참여하는 교육’에 힘을 실으려 한다는 점이다. 제주서귀포중 오윤진 교사는 “아이가 묻는 질문에 함께 답을 찾으려는 수업, 친구와 마을이 같이 성장하는 커리큘럼이 이제 시작됩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걱정의 목소리도 크다. “혁신선도”라는 이름이 예산 퍼주기, 보여주기식 실행으로 매몰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 고교 내신·입시에서 실질적 도움 없이 프로젝트가 끝나버릴 수 있다는 우려, 기획 초기 임기응변식 정책 설계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하지만, 교육 격차 해소의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다르다. 시간과 예산이 걸림돌이어도, 변화를 만드는 주체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한파 속 버스정류장에서 교복 입고 떨고 서 있는 고3, 친구와 함께 읽고 토론하는 독서동아리에 참석하는 초등생, 이웃 학부모들과 온라인 카페에서 내일을 고민하는 엄마들. 이 모든 이야기가 오늘의 ‘교육혁신선도지역’ 실험을 통해 모아지고 있다. 정책은 한 번에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교육의 중심에 다시 ‘사람’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섬이라는 한계는 분명 극복할 수 있다. 대한민국 아이들 모두에게 고른 성장과 배움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이상—이제 제주는 ‘선도적 실험’으로 그 희망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각계의 지혜와 견제를 담은 목소리, 더 오래 곁에 머무는 정책의 진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내일 등굣길에, 환하게 웃는 그 한 명의 아이가 있다면, 이 도전은 멈추지 않을 이유가 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이 작은 실천들이 모여 공감과 신뢰, 새로운 제주 교육의 길을 열기를 소망한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