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교육의 미래를 위한 숙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내일
2000년대 초반 전북 김제의 작은 마을에서 만났던 초등학교 3학년 강수민 학생을 오늘도 떠올린다. 부모님 맞벌이로 혼자 다니던 학교, 난방도 잘 되지 않는 교실, 아이는 손발이 늘 시려웠지만 선생님의 따듯한 말 한마디와 관심, 마을 도서관의 책 몇 권에 기대 배움을 이어갔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전라북도교육청이 미래를 위한 교육 정책 연구과제 공모에 나섰다는 소식은, 아직도 지역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라북도교육청이 2026년 9월, 새로운 정책 연구과제 발굴을 선언했다. 지난 수십 년간 전북 지역은 인구 감소, 지역 소멸, 교육 환경 격차 등 굵직한 사회 문제와 동행해왔다. 어린이와 청소년, 학부모, 교원, 연구자 모두가 체감하는 변화와 답답함이 반복되는 가운데, 대면적이고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을 넘어서는 해답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당장 익산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다문화 가정 학생 비율이 35%를 넘었다. 담임교사 장은영 씨는 아이들 간 언어, 문화 차이 극복을 위해 매년 수업 방식을 고쳐가지만 여전히 답을 찾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이번 정책 연구과제 모집의 의도에는 ‘현장 중심’이란 키워드가 짙게 배어 있다. 단순 행정 중심의 정책 제안이 아니라, 우리 지역 실정에 맞는 참신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바란다는 뜻이다. 전국적인 흐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제안한 ‘다중 언어 프로젝트’, 경상북도의 ‘마을 교육공동체 구축’ 정책 등 지역의 특색과 수요에 기반한 연구과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지역적 현실을 피부로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는 정책과제로 반영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왔다. 때문에 이번 공모가 던지는 직접적 메시지는, ‘정책 수혜의 당사자’인 아이들과 교사, 지역사회, 그리고 부모님 한 분 한 분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책 연구과제 제안에 관한 참여 방식을 뜯어보면, 온라인 접수와 함께 지역교육협의체, 시민단체, 학교 현장 간 다양한 정보 공유가 장려된다. 단순히 글로 적어내는 절차를 넘어서, 토론회와 워크숍, 마을회의 등에서 실제 아이디어가 발굳는 과정을 담겠다는 것이다. 지난 해 무주군의 ‘학교 텃밭 가꾸기’ 프로젝트처럼 교육 현장의 작은 실천이 정책 연구로 이어진 사례는 아직 적지만, 이를 계기로 더 많아지길 바라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심은주 씨는 “매번 정책이나 제도가 늘 바뀌고, 그 변화가 실제로 우리 아이한테 도움이 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주민, 학부모가 직접 참여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면 현실성이 더해질 것 같아 처음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가 기대하는 미래는, 수민이와 같은 농촌의 아이, 또 익산의 안드레아처럼 이주배경을 가진 청소년, 군산의 장애학생, 그들 모두가 ‘차별 없는 환경 속에서 자기 길을 찾는 교육’이다.
반면, 교육 관련 연구의 공모 과정이 지나치게 형식적 절차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계의 시선도 있다. 교육단체 관계자 박진수 씨는 “정책 연구가 현장의 작은 목소리까지 섬세하게 포착하려면, 사전에 충분한 설명·소통 절차가 병행되어야 하고, 정책결정 과정 자체가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 정책의 미래는 사람-사람 간 신뢰에 달려 있으며, 행정과 현장이 동떨어질 때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도 빛을 잃는다.
이를 계기로 최근 전국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연결된 마을 학교’, ‘기후위기 시대 지역기반 교육’, ‘디지털 격차 해소’ 등 주제를 둘러싼 논의가 전북 지역 현장에도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다. 인근 전남, 충남 교육청에서도 지역의 작은 학교과 마을의 역할에 주목하는 정책연구 성과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단, 아이들과 주민, 교사들의 목소리가 명확히 반영되고, 실행으로 귀결될 수 있는 실질적 시스템이 동반되어야 한다. 과제가 선정되고 나면, 실제 추진 단계의 점검 역시 뒷받침되어야 지속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자주 놓치는 것은,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에서 ‘지금 현장에서 가장 답답한 문제는 무엇인지’, ‘우리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이 십 년을 산 동네 할머니부터, 지난주 처음 전북에 온 이주가정 엄마까지, 모두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정책 연구과제 공모는 결국 사람 이야기를 듣겠다는 다짐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람 중심의 변화’가 실현될 때, 전북 교육의 미래는 조금 더 희망으로 물들 수 있다.
아이들, 교사, 학부모 그리고 지역 모든 구성원이 정책의 진짜 주인공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이번 정책 연구과제 공모가 형식적 절차가 아닌, 모두의 삶을 담는 시작이 되길 바란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