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케어법, 과연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디지털헬스케어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계속해서 심도 깊은 논의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의료 AI, 확장현실(AX, Augmented eXperience) 등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건강 관리 체계를 빠르게 구축하려는 가운데, 국회는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복지부는 올해 11월 법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일부 의원들은 개인정보보호·의료정보 활용·의료기기 안전 검증상 문제, 일부 의료계의 반대, 사회적 신뢰 부족 등을 들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의료현장에서 큰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실제로 현장의 의료인들은 이미 불확실성과 두려움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내과의원에서 진료실을 지키고 있는 김선영(46) 원장은 “AI 의료기기로 환자 데이터를 분석해서 맞춤형 처방이 가능해진다는 점에 기대도 크지만, 환자 개인정보 유출이나 판단 오류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게 걱정”이라고 토로합니다. 이런 불안은 환자들에게까지 번집니다. 지난달 만성질환으로 10년 넘게 치료받고 있는 박상철(62) 씨는 “병원 갈 때마다 내 건강정보가 어디까지 사용되는지, 나중엔 보험료까지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정책은 좋은데, 결국 나 같은 사람이 실험 대상이 되는 건 아닌지 겁이 난다”고 말합니다.
정책 추진 배경에는 2020년대 중반 이후 급가속화된 의료 수요의 디지털 전환, 그리고 팬데믹 이후 원격의료·비대면 진료의 확대라는 흐름이 있습니다. 이미 미국·일본·유럽 주요국은 AI 기반 진단, 스마트 진료 및 원격 치료 제도를 상용화하고 있어 세계적인 흐름에 뒤처진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의료 데이터의 보안, 환자 동의 시스템 등에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 충분한 공론화 절차가 매우 더뎌졌습니다. 복지부는 일단 ‘안전망 및 개인정보보호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내세워 민감한 의료 데이터의 철저한 관리, 환자 동의 절차 강화, AI 의료 기기의 인증과 감독 방안 등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 모 의원은 “디지털 전환이 곧바로 혁신과 혜택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소외계층, 정보취약계층, 고령층의 디지털 불평등 역시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현장으로 시선을 옮겨봅니다. 경남 진주의 한 치과에서 7년차 치위생사로 일하는 박현정(33) 씨는 몇 달 전부터 ‘AI보조 진단 소프트웨어’의 도입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학습이 부족해서 선배들끼리도 시행착오를 반복하죠. 사람냄새 나는 진료가 점점 어려워질까 걱정돼요.” 이러한 우려는 의료 공급자, 의료기기 업체, 환자 모두의 이해를 조율해야 하는 복지부에게 기로에 선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한편, 소규모 병·의원의 경쟁력 약화 문제까지 제기됩니다. 대형 병원, IT기업, 원격진료 플랫폼에 중심을 둔 디지털헬스케어법이 통과되면 의료서비스의 질적 격차가 커진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데이터 기반 혁신이란 목적이 사회적 약자와 농어촌, 지방 병의원에서 오히려 차별로 이어지지 않게끔 만드는 현장의 목소리, 이번 법안 논의의 열쇠입니다.
유럽, 일본 등은 국회 상임위 산하 별도 윤리위원회, 시민대표 심의기구가 디지털헬스케어 정책 자문에 참여하며 더욱 촘촘하게 의견을 청취합니다. 한국은 아직 공론화 채널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이번 법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 시민, 의료계가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면 AI와 빅데이터 기반의 건강관리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확산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 환자 개개인이 느끼는 ‘안전함’ ‘신뢰’ ‘함께하는 돌봄’입니다. 사회의 모든 변화가 그렇듯, 오늘의 변화 역시 현장 속 평범한 이들의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가장 공정한 균형을 잡을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