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AI 시대, 내 진료기록의 주인은 누구인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심장질환 관리를 받고 있는 50대 김인호 씨. 최근 그는 대기 시간을 줄여주고, 맞춤 치료 방안을 제시해주는 인공지능 기반의 진료지원 서비스를 처음 경험했다. 의사가 버튼을 누르자, AI가 진단·치료법을 추천해줬다. 김 씨는 진료실 밖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기록이 어떻게 AI의 판단을 만드는 데 쓰였는지 걱정이 앞섰다. 의료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일까. 최근 의료계와 산업계, 시민사회에서 AI 기반 진단·예측 기기의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의료기관과 IT 대기업, 환자 각 주체들의 의료데이터 ‘소유권’이 뜨거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진료기록, 즉 환자의 임상 데이터는 AI 진단모델의 핵심 원료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 등 국내 어느 법률에서도 ‘진료기록의 소유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전문 의료진과 병원마다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도 상이하다. 일부 병원은 “법적으로 책임질 건 병원이니, 기록도 병원 소유로 본다”고 강조한다. 반면, 환자 개인정보보호 강화를 주장하는 단체들은 “진료기록은 결국 내 몸, 내 건강에서 나온 것이니 환자 소유”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보고서에서도 의료정보법의 부재로 인한 혼란과 개인정보 노출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한다. 또 학회원에 따르면, 실제로 여러 대형병원이 진료기록 복사 요청에 소극적이거나 지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산업계 움직임이다. 의료 AI 개발을 앞세운 대기업들이 병원과 협약을 맺고, 대규모 환자 진료기록을 활용한 AI 학습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한다. 이 때 환자들의 동의가 적절히 이뤄졌는지 불투명하다. AI 업체는 “데이터로 혁신을 만들려면 활용 범위가 넓어야 한다”는 논리로, 소유권 논의를 뒤로 미룬다.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은 의료데이터 활용 기준과 주체를 법적으로 명확히 해왔다. 구글 딥마인드와 영국 의료청이 소송에 휘말렸던 사례 등에서 알 수 있듯, 환자 동의·이익의 선명한 원칙이 없으면 사회적 파장이 불가피하다.
진료기록 소유권의 모호성은 AI 시대에 투명성과 신뢰 기반 자체를 흔드는 요인이다. 만약 내 건강정보가 기업 이익, 혹은 병원 시스템 개선을 위해 광범위하게 분석·활용되었다면, 그 과정과 이익분배, 데이터 보안 모두에서 투명한 기준이 선행돼야 한다.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일수록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평등도 내포한다. 압구정의 한 장애인단체 활동가는 “데이터를 팔아 병원이 이득을 보는데 당사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건 의료 신뢰의 붕괴”라고 지적한다. 대다수 환자와 가족들은 기록의 적정 활용과 권리에 대해 정확히 안내받지 못한 채, 시스템의 효율성만 체험할 뿐이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했지만, 뚜렷한 입법은 부진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개인정보법, 의료법, 데이터법이 교차하는 지점이라 합의와 조정이 쉽지 않다”는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최근 시민단체와 국회 일부 의원들 중심의 ‘의료데이터 소유권 명확화’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 미국 HIPAA법은 기록의 내용 소유권은 의료기관에, 접근 및 활용 권한은 환자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대한민국은 진료기록 열람권조차 분명하지 않아, 환자가 자신의 기록 사본을 받으려면 복잡한 절차와 비용, 병원 측 소극적 대응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의료AI가 고도화될수록, 기록은 미래 건강 산업의 ‘디지털 금맥’이 되고 있다. 산업화의 속도에 맞춰 데이터 윤리, 환자 권리, 책임소재를 담보할 사회적 안전장치가 시급하다. 타인의 진료기록이 ‘나와 무관하다’는 착각은 환상이다. 오늘은 남의 기록이지만, 내일의 소유권 분쟁과 데이터 유출, 정보 오남용, 그리고 치료 선택권 박탈 문제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된다.
의료서비스가 사람과 연결될 때, 기술은 단순 효율을 넘어 더 깊은 신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데이터의 가치와 책임, 그리고 사람 중심 의료의 원칙이 균형 있게 논의될 때만이, AI 혁신도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 뜨거워지는 의료AI 시대의 기록 소유권 논쟁 속에서, 진료실 안팎의 수많은 이들이 묻는다. ‘도대체 내 기록은 누구 것인가?’
— 김민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