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10·19,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 묻다
2026년 10월, 여순10·19 평화·인권 교육 포럼의 패널 토론이 진행됐다. 이번 포럼은 여수·순천사건 80여 년이 흐른 시점에서 처음으로 ‘교육’의 렌즈로 이 사건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지역사회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교육계, 청년단체,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아 과거의 비극이 오늘날 우리 교육현장과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다시 새겼다.
여순10·19 사건은 1948년 10월, 당시 국군 일부 부대가 제주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전남 여수·순천 일대에서 벌어진 민중항쟁과 진압,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한 무고한 주민 희생을 포괄한다. 국가와 사회, 인간과 권력 간의 복합적인 관계와 구조적 폭력,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의 망각과 책임 회피가 지난 수십 년간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했는지 이 포럼을 통해 검토됐다.
정책 차원의 논의 또한 활발했다. 최근 교육부는 중·고교 역사교육 지침에서 여순사건을 보다 적극적으로 다룰 계획을 시사했지만, 교실 현장의 변화는 여전히 더디다. 포럼에 참여한 교사와 청년 패널, 그리고 인권활동가들은 “역사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건강한 시민의식, 진실한 공동체의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지역 청년 사례 발표에선, 지역사회 내 여전한 편가르기와 침묵, 기념사업의 한계가 강조됐다. 이들은 단순한 ‘추념’이나 ‘기념일 지정’만으로는 과거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할 수 없음을 토로했다. 이처럼 사건의 교육적 재해석과 생활공동체 내 실질적인 치유의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주목할 점은 여순10·19 사건의 사회구조적 맥락도 깊게 논의됐다는 점이다. 현장에 모인 학자, 교사, 청년 들은 ‘국가폭력’의 실상이 남기고 간 후유증을 실감 있게 조명했다. 이는 오늘날 다양한 사회 갈등의 근원과도 맞닿아 있다. “국가가 공권력 행사의 책임을 끝까지 직면하지 않는다면, 같은 과오가 반복될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발표자의 목소리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적인 경고로 읽혔다. 실제로 과거사 사건에 대한 국가의 공식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 등 과제는 반복돼 왔지만 피해 가족과 지역민 사이의 소외감, 공존을 위한 교육의 부재는 여전하다.
최근 교육 정책 변화와 더불어 평화·인권 교육 확대 논의도 상대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포럼에선 초·중등 과정에서의 역사교육 개선과 실천적 인권감수성 증대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인상적인 것은 청년 세대의 적극적 참여다. 알려지지 않은 마을 거주자, 유가족,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청년 패널들이 직접 채록하고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기록의 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내는 새로운 주체로서의 젊은 세대에 주목하게 만든다.
여순10·19는 단순한 지역적 희생사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기억하고 토론해야 할 보편적 인권이슈다. 시민사회는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현실의 문제로 직시하는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강하게 촉구한다. 토론장에서 소개된 생활 속 작은 변화들(예를 들어 지역 공동체 내 대화모임, 추모공원에서의 만남, 세대 간 편견 해소 노력 등)은 화해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역사교육’만이 정답일 수 없다는 목소리도 공존했다. 구조적 차별, 지역갈등, 그리고 사회적 침묵이라는 난제까지도 동시에 직면해야 함을 지적했다.
지난 202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불거진 다양한 사회갈등(노동, 젠더, 지역 등) 속에서, 여순10·19 재해석은 단순히 과거 복원이 아니라 미래의 평화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이 확연해졌다. 패널들은 “역사의 정직함을 바탕으로만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 포럼은 교육, 사회, 공동체 모두가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역사적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피해의 기억을 사회적 상상력과 실천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남겼다.
— 강지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