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 대중음악의 큰 별이 지다…다시는 오지 않을 목소리

강헌. 그 이름을 부르면 떠오르는 스펙트럼. 80년대의 록부터 90년대의 대중성, 2000년대 이후 플랫폼의 파도까지—한국 대중음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터프한 해설자이자 유쾌한 예술가. 64세라는 나이, 우리로선 너무 짧게 느껴지는 한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오늘 넘겨졌다.

포털 뉴스 탑, 실시간 SNS에서 해시태그로 번지는 ‘#강헌’의 물결. 그가 남긴 정수는 숫자로 정리할 수 없다. 대중음악평론가라는 타이틀이 전부가 아니었다. ‘평론’의 정통과 ‘예능’의 귀재, 라디오 마이크를 쥔 한밤의 DJ. 인문학에서, 스트리밍 시대까지 시대를 가로질렀던 세련된 멀티태스커였다. “음악은 듣는 것이다”라는 식상함에 ‘음악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던진 직구. 그의 평론은 늘 리듬이 있었다. 숏폼 영상 같은 쿼터 박자 속도감. 단단한 논리와 거침없는 비쥬얼, 말의 힘이 있었다.

각종 매체와 무대에서 남긴 메시지는 또렷했다. 지상파 음악 시사프로의 묵직한 패널, 각종 출판 프로젝트, 지자체와 연결된 생활문화기획자. 포스트-코로나 시대 스트리밍-모바일 생태계에 누구보다 빨리 적응한 거장—팬데믹 기간에도 음악과 삶을 연결하는 온·오프 믹스의 주인공이었다. 강헌은 노화를 두려워하지도, 변화를 거부하지도 않았다. 60대 초반까지 최신 음원 트렌드, 인디 신, NFT 음악시장까지 분석하며, 세대와 마이크를 공유했다. 유튜브와 숏폼에 적응한 몇 안 되는 시니어이자 디지털 음악시장의 해법을 내놓던 비주얼 지휘자였다.

누군가는 강헌을 ‘진보적’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는 선언이나 구호 대신 유연한 데이터와 경험, 현장성을 강조했다. 국내외 대중음악계를 아우르는 큐레이션 감각, 음악의 맥락을 짚어내는 집요함, 그리고 화법에서 빛나는 그만의 리듬. ‘음악은 결국 사람과 시대’라는 메시지, 신파도, 냉소도 아닌 날 것의 진심이 있었다.

❶ 현재의 음악평론가들이 데스크에만 앉아 소셜을 뒤지는 와중, 강헌은 골목 콘서트 현장, 동네 독립서점, 유튜브 라이브방을 오갔다. 장르 구분, 세대 벽은 그에게 무의미했다. 흑인음악, 신해철, 힙합—이 모든 방정식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기록했다. ❷ 각종 기록영상, 팟캐스트, 스트리밍 음원 큐레이션까지 ‘지금 음악은 뭔가, 대중은 뭘 듣고 있고, 산업은 어디로 가나’를 실시간 리포트로 뽑았다. 이노베이션과 스토리텔링의 균형. 현장성에 뛰어든 마지막 평론가, 공감의 도구를 스스럼없이 업데이트한 IT-뮤직 크로스오버 플레이어.

음악계에 ‘아날로그의 끝, 디지털의 시작’을 연결한 강헌. 인디팬, 90년대생, 그리고 70년대 K록 팬덤까지—누가 그와 마주쳤든 ‘음악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얻었다.

만약 강헌이 오늘도 살아 있다면, ‘음악마케팅의 방점은 진정성’이라는 말을 또다시 던졌을 것이다. 콘텐츠 전략자가 된 음악가. 그의 파동은 유튜브 쇼츠, 숏폼, 트렌디 큐레이션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남겨진 아카이브 영상, 기록 자료들은 이제 더 중요한 문화 자산이 됐다.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강헌이라는 그루브도 마찬가지.

마음이 먹먹하다. 장르는 비슷하되 아티스트는 다르고, 무드는 늘 새로웠다. 빈자리의 여운, 남겨진 목소리. 그런데,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마다 강헌의 전설이 또 한 번 새로 태어난다는 사실. 음악계는 슬프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오늘도, 내일도, 그 이후에도 ‘재생중’.

— 조아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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