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탄소중립 앞장선다더니…법정에선 정반대 주장 내세운 발전공기업

국내 발전공기업이 탄소중립 정책의 선봉에 서겠다고 대외적으로 선언했지만, 최근 한 행정소송에서 자사에 유리한 방어 논거를 위해 ‘기후변화로 경작지가 늘었다’는 태도를 내세운 정황이 확인됐다. 한국전력 산하 발전 계열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담론이 공식적 경영 방침이 되었음에도, 소송 진행 과정에서는 자신들의 개발 사업의 정당성을 위해 환경 변화(기후위기)로 인한 역설적 이익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취재 결과 발전공기업은 정부 및 시민사회의 핵심 이해관계자로서 ‘탄소중립 사회’ 실현에 앞장설 것을 반복적으로 공표했고, 경영실적 설명회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착’, ‘2050 탄소배출 넷제로’ 등 수치를 근거로 한 약속을 내세웠다. 그러나 공공기관 부지 개발 및 인허가 분쟁이 진행된 재판 현장에서는 전혀 상반된 논리, 즉 생태 파괴 주장에 맞서 ‘오히려 최근 수년간 경작 면적이 증가했으며, 이 변화는 기후변화의 덕분’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실제 법정에서는 ‘기온상승 및 강수량 변화가 경작 여건 개선을 가져왔다’, ‘기존 논(논밭)과 밭의 증가가 환경 파괴와 연관 없다’는 취지의 증거자료 제출 사례도 포착됐다. 즉, 자체 행정처분 취소 청구를 위한 증거로 기후위기 현상을 개발 논리의 근거로 삼은 셈이다. 이는 그간 정부와 기업이 강조해오던 ‘기후위기 예방’, ‘탄소 감축의 사회적 책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더욱이 국회와 각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가 발전공기업의 역할에 엄격한 책임을 주문한 시점에서 이번 소송 전략의 모순성은 사회적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다른 주요 발전공기업 사례를 보더라도, 표면적 ESG 경영과 달리 사업 현장에서는 불편한 자기 모순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A발전사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 달성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사업지역 환경평가 소송 과정에서 산림감소·습지변화를 ‘지역경제 활성화’ 및 ‘환경 재조정’ 탓으로 해당 사안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수자원공사 등 유관 공기업도 신도시 조성/신규 발전시설 용지 확보 단계에서 현행 환경법규의 사각지대를 활용, ‘기존 생태 변화는 자연적 현상’이라는 면피성 주장으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 환경단체 등은 “겉으론 기후위기를 막겠다더니, 개발이익 앞에서는 오히려 기후변화를 사업 합리화의 명분으로 쓴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를 법정 논리와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간 심각한 괴리로 분석한다. 한 행정법 변호사는 “법률상 자사 이익 보호를 위해 근거 내세우는 건 소송 전략상 흔한 일이지만, 주체가 공공성을 명분으로 한 국책기관이라면 공공적 가치와 논리의 일관성 유지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후변화’라는 국가적 과제이자 범지구적 재난을, 철저히 상황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소환하는 것은 사회 신뢰 자체를 흔드는 요인이라는 진단이 잇따른다.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기관일수록 장기적으로 기후신뢰지수, ESG평가, 국제금융 그린채권 발행 등에서 불이익을 면하기 어렵다. 국내외 2050 탄소중립 의무와 직접 연동되는 산업 영역의 경우 이중적 논리 노출시 해외 투자 및 기술협력도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공기업 별 ESG등급 하락, 대외신용도의 환경항목 감점 등 다수의 실적저하 신호도 최근 두드러진다.

현행법상 기업의 법정 진술은 일종의 변론전략 영역이지만, 공공기관의 경우 각종 사회적 의무와 정부 정책 준수를 전제로 한 ‘사회적 허가’ 및 국민적 신뢰가 성립된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의 재판 사례에서 드러난 ‘탄소중립 대외 약속’과 ‘기후변화의 개발 기회화’ 사이의 모순은 단순 윤리적 문제를 넘어, 궁극적으로 법과 정책환경에 대한 사회적 신뢰 저하, 더 나아가 탄소중립 실현의 동력 약화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데 구조적 위험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정부와 국민 모두 탄소중립 및 기후위기 대응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공기업의 메시지와 실제 사업 현장 및 소송장 속 논리가 얼마나 균형을 이루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할 필요가 제기된다. 기업 경영보고서의 화려한 슬로건보다 실제 자신들이 펼치는 법정 주장이 사회 전체의 환경적 가치, 지속가능성 가치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세밀히 따져볼 때다. 사회적 책임을 내건 공공주체일수록 더더욱 말과 행동의 일치, 그리고 그에 대한 투명한 피드백체계가 필요하다. 한 순간의 전략적 논리 선택이,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의 기후 신뢰와 환경 윤리 지형까지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지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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