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광역특구법’ 속 69시간 유령, 누가 일터를 ‘개방’하는가

윤석열 정부가 철회했던 ‘주 69시간 노동’의 망령이 ‘초광역특구법’에 숱한 독소조항으로 되살아났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밀어붙인 이 법은 대기업과 일부 지방자치단체, 여당 중심 경제권력을 연결고리 삼아 현행 노동 시간제를 사실상 무력화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기업 특히 IT·제조업 분야에서 전방위로 요구해 온 효율·유연화 명분이 ‘특구’라는 기상천외한 포장 아래 안착한 셈이다.

노동시간 상한선 재검토 논의는 윤 정부 초기부터 ‘노동시장 개혁’ 프레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지난 2023년 4월, 노동계와 청년층의 집중 반발에 윤 대통령이 “근로자 건강권은 타협 불가”라며 사실상 백지화했다. 그 뒤 불과 2년 4개월 만에 ‘초광역특구’란 지역성 강화 논리와 융합되어 국회의 문턱을 넘으려 한다. 법조문에는 대통령령으로 지자체장이 기업과 협의해서 ‘노동 관련 규정’의 일부를 임의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즉, 법상 상한선을 초월하거나 예외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는 독소조항이 슬쩍 집어넣어졌다.

지방정부에게 더 많은 재량을 준다는 점에서 분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권한 배분은 대기업, 관료, 정치인 삼각 동맹의 현장특혜에 가깝다. 지방의회나 시민통제 장치는 미비하며, 경제적 파이를 키운다는 명분으로 복지·노동권을 부차화한다. ‘초광역특구’란 단어가 주는 희망적 이미지 뒤에는 사실상 중앙 권력의 카드가 지방으로 분산되는 척, 실상 노동통제가 현장 기득권에 넘어가는 시스템이 숨어 있다. 공공부문마저 예외 규정에 포함되면서, 교육·보건영역까지 ‘합의’만 나타나면 노동시간 늘리기가 가능해질 우려가 크다.

기득권 프레임 활용은 정치적으로 익숙한 방식이다. 여야 모두 지역표심을 겨냥한 경제개발 공약에 취약하다. 민주당 일부 비주류와 보수 정당 실무진도 “혁신 클러스터 경쟁력”이란 미명 하에 법안 처리를 흐지부지 묵인했다. 실제 노조와 시민사회, 청년단체가 일제히 반발에 나서도, ‘일자리 창출’ ‘지방 살리기’란 구호가 정치적 방패가 되어버리는 구조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노동시간 최대 상한’이란 문구는 빠지고, 대신 비상설 심의위원회(특구혁신위원회)가 ‘지역 특성’에 따라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우회 조항이 삽입됐다. 기술산업혁신·외부투자 유치라는 프레임에 밀려 건강권·생명권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현장 목소리가 날로 커진다.

재계는 오래전부터 노동 유연성 확대를 요구해왔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 경영계의 노동규제 완화 압력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초광역특구를 통한 노동 규제 해체는, 일본의 니가타·후쿠오카형 특별지대 도입 논란과 금융·IT산업 이주 촉진정책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일본, 유럽 일부 국가도 공통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후퇴 또는 재조정에 나선 반면, 한국은 여전히 “경제성장 vs 복지권리”라는 90년대식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 대상은 20~30대 청년층, 플랫폼·IT·제조업 현장의 비정규·특수고용노동자다. 대기업에 종속된 하청·협력업체 종사자들이 주되지만, 이른바 디지털노마드 계층 역시 끝없이 늘어날 노동량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쏟아지는 일자리’를 기대하라는 논리는, 정작 현장에서는 더욱 불안정한 고용, 초과근무와 강요성 ‘협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OECD 평균 대비 세계 최장 노동시간, 저출생·과로사 최상위, 이미 명백한 데이터가 쏟아져도 구조 변화를 거부하는 정치권의 ‘구호 실종’은 뼈아프다.

반면 여권과 재계는 “지역 살아나야 국가가 산다”며 단기 대규모 투자, 규제완화, 혁신 인재 유입의 선순환 시나리오를 내세운다. 서울·수도권 일극 집중과 지방소멸 프레임이 짙게 발라진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 ‘특구’ 도입 region마다 정주인구 전입효과, 인구유출 방지 성과는 미미하거나 역효과 다반사다. 또한 국가정책의 예외 구역이 늘어날수록 사회적 기준 자체가 무력화되곤 했다.

권력지형 측면에서 보면, 정부·여당은 노동계·진보진영의 ‘강성 저항’이 국민정서와 동떨어졌음을 적극 활용한다. “지방 발전”이란 프레임은, 복잡한 노사합의나 사회적 논의 대신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로 변질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건강권 타협 불가’를 천명했던 과거와 현장의 간극은 더욱 뚜렷해진다. 정치적 주도권 다툼이 반복될수록, 개별 노동자의 삶은 밀어붙이기 정책의 실험대가 됐다.

전문가들은 ‘최장 노동’ 규제 완화가, 경제성장보다는 장기적 사회비용(의료비, 정신건강, 가족해체, 고령화 부양 문제 등)만 늘릴 것이라 경고한다. 성장 프레임을 견인했던 70~90년대식 정책 반복은 21세기형 사회안전망, 가족친화 사회전환 흐름과는 점점 어긋난다. 각종 국제지표에서 한국은 여전히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자조적 비판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초광역특구법에 숨겨진 69시간 노동 부활 시도는 정치·경제권력의 이해가 ‘지역’과 ‘국가성장’의 언어로 포장된 채 제도의 뒤켠에서 작동하는 전형적 패턴임이 확인됐다. 국민경제와 사회안정이라는 명분이, 개별 노동자의 기본권리와 상충된다면 우선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국회와 정부, 여야 모두 답해야 한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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