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의 죽음이 남긴 언어, 시대, 그리고 우리
일본 현대 문학의 상징적 존재였던 무라카미 류가 세상을 떠났다. 2026년 10월의 깊어가는 밤, 일본 문단은 또 한 명의 ‘경계인’을 잃었다. 그의 별세 소식은 일본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의 독서계에 크지 않은 충격의 파장을 남겼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소설가의 죽음’이라는 문장 뒤엔, 지금도 그를 읽었던 작가들, 젊은 독자들이 느끼는 허전함과 존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942년 출생, 1976년 등단 이후 소설가는 한결같이 일본의 어두운 변방, 도쿄의 빈민가, 혹은 청춘의 무의미함과 폭력, 실존의 위기를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재패니즘의 허위, 황폐한 도시 풍경, 젊은이들의 일그러진 욕망…무라카미 류의 작품에서 이런 단어들은 단순 배경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의 일부였다. 대표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금기와 폭력, 마약, 섹슈얼리티가 소용돌이치는 청년 문화의 혼돈을 신랄하게 그려내며 독자에게 ‘충격’ 이상의 체험을 안겨주었다. 1977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시작으로, 그는 일본 문학계가 오래 외면했던 ‘오염된 시대의 실상’을 강렬하게 견인했다. 우리 독자들에게는 ‘무릎을 꿇은 인간’의 낮은 시선, 잔혹하되 애틋한 삶의 그림자가 특히 깊이 각인되어 있다.
작가로서 무라카미 류는 늘 한 발 밖에서 현실을 응시했다. 그는 관조하거나 냉소하는 태도보다는, 文의 본성에 더욱 예리하게 매달리는 태도를 취했다. 이방인, 주변인, 혹은 격렬하게 무엇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공감. 그의 문장은 전형적 일본 문학 특유의 은유와 서정 대신, 직설과 파괴, 그리고 당혹스러운 리얼리즘으로 시대의 변화와 맞섰다. 그 효용과 한계 또한 분명하다. 비평가들은 ‘표면적인 자극’ ‘무너지는 윤리’에 의문을 던지기도 했으나, 그마저도 일본 현대 자신들의 불안을 비추는 거울로 받아들였다. 이는 단순한 스캔들러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불안, 욕망, 무력감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문학의 실험실’이었다.
무라카미 류와 동시대 일본 소설의 흐름을 놓고 보면, 그는 하라키리적 관념이나 전후(戰後) 비극보다 더 본능적이고 현실에 천착했다. 전후의 황폐를 ‘살아 과장된 것’으로 담아낸 오에 겐자부로와 달리, 무라카미 류는 평범한 청년의 세속 내면, 저마다의 공허와 분노가 뒤섞인 일상을 집요하게 묘사했다. 1980~90년대 일본 사회의 닫힌 상자, 즉 ‘붕괴하는 공동체, 폭력의 내재화’를 탁월하게 전유한 몇 안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류의 소설들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젊은 작가와 독자들에게 ‘자기 파괴’가 문학이 되고 시대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납득시켰다.
작품 외적으로도 그는 한 시대의 문화 선언자였다. 원작 소설을 아우르는 영화・드라마 각색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음악・예술 등 다매체에 걸쳐 ‘일본적 감수성과 폭발력’을 변주해왔다. ‘러브 앤 팝’, ‘탑 드루저’ 등은 청춘의 소실점과 욕망의 형태를 영화 이미지로 시각화한 대표적 시도다. 그의 감독적 감수성—과감한 해체, 극한의 정면 승부, 인물의 잔혹성에 깃든 연민—은 결국 문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생존·폭력·치열함 자체로서 시대를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설가의 방식은, ‘마라톤 주자처럼 글을 써라’던 그의 말처럼 체력과 끈기로 무장되어 있었다. 이 특유의 서술 체조와 치열한 자기 사유는 동시대 한국, 특히 OTT 드라마 대본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교적 최근에는 사회민감 이슈, 젊은 세대 층의 고독과 분노, 일본 사회 이면의 ‘지옥도(地獄圖)’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파고들어 일본 평단의 인정은 물론, 스크린 산업에서도 독특한 창작자의 위치를 점했다. 이는 ‘류적인 세계’를 가능하게 한 집착, 그것도 자기 자신을 명백히 망가뜨릴 줄 아는 용기에 기댄 것이다.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너무 진하다’, ‘스캔들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는 늘 시대보다 한 발 앞섰다. 오늘날의 무라카미 류는 거칠지만, 여전히 불편함 없이 읽히는, 그래서 더 오래 가는, 일종의 시대 진단서로 남는다.
그의 문체엔 고통과 아름다움이 함께 각인되어 있었다. 글 속에 묻어났던 생동하는 공포감 혹은 절박함, 때로는 분노마저도 한 시대의 영혼을 대변했다. 독자들은 이제 그를 ‘반항아’가 아니라, 예민한 나침반을 지녔던 탐구자로 기억한다. 궁극의 질문, “우리가 무엇을 살아가는가?” “무엇으로 사랑을 견디는가?” 류는 이 답을 자신만의 투박한 언어로 끝까지 써내려갔다. 인간의 추락과 비상, 윤리의 붕괴 속에 남은 온기, 그것이 그의 문학을 고이 남아 있게 했다.
세상은 변해가면서, 그의 태도와 문학 역시 끊임없이 도전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류의 작품은 지금 이 땅에서도 공명한다. 디지털 시대, OTT를 거치는 젊은 세대까지 ‘현실과 섞였던 환각, 시퍼런 생존의 몸짓’을 다시금 되짚을 수 있게 만든다. 이제 시간 속으로 그의 소설이 남아, 인생의 다음 장을 이어갈 것이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