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선행학습 규제, 교육격차 키울라

서울 관악구의 영호 씨(40)는 어린 딸의 사교육을 줄이기로 마음먹은 뒤에도 매주 오후마다 고민에 빠진다. 동네 도서관에서 들려오는 ‘다음 주엔 무슨 문제를 풀었냐’는 학부모들 대화, 아이 유치원 엄마 단톡방에 올라오는 사교육 현황 스크린샷들. 모두가 아이 교육을 ‘더 빨리, 더 깊게’ 시키는 일에 몰두한다. 하지만 최근 교육당국이 사교육업체의 선행학습을 강하게 규제하겠다고 나서자, 영호 씨는 또다시 마음이 무겁다. 지금까지는 사교육이 당연한 선택지였지만, 무조건 틀어막는 단순 처방이 또 다른 불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 선행학습 규제 논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기회의 평등과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최근에는 학원, 인터넷 강의 등에서 초중고 과정보다 빠른 진도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시범관리구역을 지정하고, 위반 시 강력한 행정처분을 예고했다. 그 취지는 분명하다. ‘선행학습 금지’가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실제로 학원가와 전문가들은 선행학습 규제가 오히려 양극화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장에서의 공감 역시 쉽지 않다. 강남의 유명 초등 학원가 관계자는 “진도 규제를 너무 강하게 하면 ‘개인 과외·블랙 학원’ 등 그림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푸념한다. 학부모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상반기 한 신용카드사와 교육부가 공동조사한 ‘2026 대한민국 사교육 리포트’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2%가 “엄격한 규제가 오히려 고소득층의 비공식 사교육 수요를 키울 것”이라고 답했다. 선행을 금지해도, 정보력과 자원이 풍부한 가정에선 부족한 부분을 튜터, 온라인 개별상담, 해외 전문서적 구입 등으로 보충한다는 것이다. 결국 규제라는 인위적 장벽이 사교육 비용을 높여 교육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또 한 측면은, 현장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심리적 변화다. 실제 경험을 들어본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수업을 맡은 김선영 교사는 “최근 학부모 상담이 2배로 늘었다”고 전했다. “선행학습 규제하면, 혹시 내 아이가 뒤처질까봐 불안한 거죠. 규제가 강화되면 비싼 소규모 과외를 택하거나 사교육비를 더 쓸 수밖에 없다고들 하세요.” 반면 열악한 환경의 학부모들은 “공교육만 믿고 있다가 나중에 더 큰 격차로 돌아올까 두렵다”고 말한다. 물론 오랫동안 이어진 학업경쟁, 과도한 사교육이 아이들의 창의·자존감에 여러 상처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틀어막기와 현실 간극이 오히려 ‘불안 불평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 문제는 결코 일부만의 고민이 아니다. 최근 취약계층 청소년을 지원하는 복지단체 ‘함께하는 미래’에서 만난 중학생 민준이(가명)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친구들은 다 학원에 다니는데 저는 못 가요. 친구들은 선행학습하면 더 빠르게 배운다는데, 난 집에서 교과서만 반복해요. 괜히 외로워지고, 학교 수업도 잘 안 들려요.” 민준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 놓은 아이들은 전국 곳곳에 있다. 정책 위에 놓인 수치는, 이런 각자의 표정과 사연을 담지 못한다.

국내외 흐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2013년부터 민간교육시장의 선행학습 제한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비인가 사교육 업체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핀란드, 독일 등은 사교육보다 공교육 커리큘럼 강화와 개별 맞춤형 돌봄에 예산을 부어 교육격차 완화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단순한 선행학습 규제를 넘어, ‘모두의 성장을 이끄는 포용적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사-학생-가정이 함께 교육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역·소득별 정보 격차를 줄이고 취약층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사교육 현실의 고단함은 누구보다도 부모와 아이의 표정에서 먼저 드러난다. 밤늦은 버스에서 졸고 있는 아이, 손에 든 문제집과 피곤한 눈빛. 사교육이 필수가 되어가는 사회에서 무작정 규제만으로 불평등을 없앨 수 있을까. 진짜 변화는, 아이 한명 한명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공공의 책임, 그리고 모두가 안심하고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 ‘선행학습’이라는 현상의 이면에 숨은 불안과 소외, 불공정까지 함께 보듬는 성찰도 필요하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숨소리를 정책이 좀 더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길 바란다.

김민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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