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기억하는 부산’ — 시네필리아 가을호, 도시의 온도와 속도를 잡아낸다

태풍이 막 지나간 다음 날, 부산 영도 앞바다에선 흰 파도와 탁 트인 하늘, 그리고 낡은 영화관 간판을 겨우 붙잡고 있는 작은 동네 주민들이 카메라에 잡힌다. 2026년 가을, 시네필리아가 돌아왔다. 이번 호는 오롯이 ‘부산’ 그리고 ‘영화’가 이 도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물었다. 취재진이 직접 부산 구석구석에 카메라를 들이밀며 포착한 화면엔, 흔한 랜드마크보다 ‘골목을 걸어 다니는 이들’, ‘노을 진 항구’, ‘간판을 내린 극장’이 먼저 들어온다. 영상 기자의 렌즈, 그 속도와 호흡으로 따라붙는 장면들은 시간의 무게와 사람들의 체취를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편집부가 내건 이슈 키워드는 다분히 현장 중심이다. 영상의 눈으로 본 부산의 역사, 그리고 필름이 기록해낸 도시의 진면목. 구석돌이들만 아는 감천문화마을 언덕을 타고 도는 카드 뉴스 포맷, 오래된 시장길을 걷는 다큐멘터리 스틸컷, 쫄깃한 낙지볶음 집 안쪽 벽에 걸린 흑백 배우들의 증명사진까지, 시네필리아는 굳이 대사 없이, 수더분하게 공간과 사람을 응시한다. 도시와 영화, 두 축의 선명한 교차점을 파고든 결과물이다.

2026년 영화계 이슈 중 ‘도시와 영화 기록’은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했다. 해외 쪽 시네마 저널, ‘필름커튼(Film Curtain)’과 ‘모노크롬 시티(Monochrome City)’도 한 해 동안 서울/홍콩/마닐라의 도시 풍경과 연동된 영화적 풍미를 특집호로 다뤘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부산 80-90년대 영화 포스터 전시회도 비슷한 수요에 관객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 2026 역시 올해 초 ‘도시와 기억’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현장 라이브 촬영팀의 다이내믹한 현장 중계가 기억 속 부산을 화면으로 재생산했다.

시네필리아의 접근은 건조한 현장 다큐라기보다 보다 정서적이다. 골목 사진 한 컷마다 뒷골목을 지나는 택시, 혹은 웬지 사라질 것 같은 포장마차 등이 영화 속 롱테이크처럼 포개진다. 매끄러운 필름 그레인 너머로 기록된 거리의 소리는 크고 작은 사연과 뒤섞인다. 2020년대 중반 이후, 과거의 부산이 아닌 지금 여기의 부산을 새롭게 체감한 다수 시네필들과 전문가들은 ‘도시는 변화하지만 필름의 기억은 신선하다’는 감상을 남겼다.

부산 출신 촬영 감독 정재윤은 이번 호 기고문에서 “도시의 심장 소리는 언제나 밤거리에 있다. 필름은 그 박동을 잡아낸다”고 적었다. 직접 카메라를 들고 서면역부터 송정 해변을 오가는 촬영팀을 따라가보면, 개봉 예정인 독립영화 스크린테스트 장면마다 쨍한 푸른색 조명, 바람에 흩날리는 전단지, 그리고 길 위의 작은 연기까지 놓치지 않는다. 시네필리아 측 인터뷰에 참여한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영화와 도시는 동시에 변화하며, 그 변곡점마다 필름이 증인이 되어준다”고 진단한다.

문화평론가 홍다해는 “예전 부산 영화 특집이 조용히 유명한 감독을 앞줄에 세웠다면, 이번엔 무명의 시민, 한밤 리어카, 길에 떨어진 바람막이…그 자체가 주인공”이라 정리했다. 취재 도중 제작진이 만난 중년 관객 여러 명도 ‘이게 내 어릴 적 집 앞 풍경’, ‘사실 이 골목은 밤에 더 영화 같았다’는 살아있는 반응을 내놓는다. 현장의 목소리, 반복되는 장면에 몰입하다 보면, 영화적 부산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 기록임을 새삼 깨닫는다.

국내 주요 영화 전문지들과도 세밀하게 비교해 보면, 시네필리아 2026 가을호는 첫 장부터 편집의 리듬, 사진의 구도, 그리고 디지털 영상화의 볼륨까지 촘촘히 배치한 점이 돋보인다. QR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영상 클립 삽입, SNS와 연계된 온라인 화보 페이지까지 전 연령 구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청년 감독들의 부산 현장 브이로그, 지역 청소년 영화 공동체의 스냅 촬영 등이 별책부록처럼 끼워져 현장감을 극대화 한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영화잡지 한 권의 한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형 투어리즘 콘텐츠로 각광받는 부산, 로컬 기반 OTT 기획 등과도 연계, 영화로 남겨야 할 도시의 단면을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서울, 인천 중심 글로벌 트렌드 속, 한국 영화계에서 부산만이 갖는 촉감과 거리감—그 독특한 결이다. 과거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필름 기록의 아카이빙, 그리고 그 바탕 위에 쌓인 2026년 가을의 부산, 그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네필리아’ 가을호, 부산의 숨소리를 따라간 카메라 속 영화적 순간들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변주되는 삶의 프레임으로, 앞으로도 이 도시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 백하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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