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하향선에 선 제작 현장…변곡점에 서다
한때 달콤한 봄바람처럼 전 세계를 매혹시키던 K드라마 산업이, 이 가을 초입의 공기처럼 다소 쓸쓸한 기로에 서 있다. 국내 드라마 업계 12개 주요 단체들이 드라마 제작편수 급감에 따른 심각한 위기감을 표하며, 국가 차원의 신속한 지원 방안을 호소했다. ‘K드라마 생태계의 붕괴 위기’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제 길을 걷다 무심코 흘러나오는 촬영 현장의 소란, 골목골목을 오가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분주함, 그리고 방영 소식에 들뜨곤 하던 시청자들의 설렘이 점차 들리지 않는다. 편수 급감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한 공간을 채웠던 환대와 상상, 그들이 빚어낸 경험들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드라마는 오랜 시간 새로운 이야기, 세밀한 감정선, 그리고 공간을 살려내는 영상미로 이른바 ‘K콘텐츠’라는 말의 위상을 만들어왔다. 강남의 고층빌딩이 낮게 깔린 비를 뚫고 펼쳐지는 현대 멜로의 탁월함, 전주 한옥마을 골목에서부터 시작된 가족극의 훈기까지, 모든 서사와 장르 위에는 풍경과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다양한 주제와 색감, 창의적인 연출과 세계관 속에서 드라마는 음식처럼 우리의 일상과 정서를 다채롭게 적셔온 문화의 보고였다. 그런 한국드라마가 지금은 ‘줄어든 제작 지원’, ‘위태로운 일자리’, ‘글로벌 OTT 시장에 대한 대응력 부족’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장에 나가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변화는, 작품이 하나 줄었을 때 스며드는 정적이다. ‘최근 1~2년간의 갑작스러운 편수 감소로 인해 업계 전반이 얼어붙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에는 곳곳의 현장이 드라마 한 편, 스태프 한 명, 배우의 한 장면마저 아끼게 되는 현실이 묻어난다. 국내외 OTT의 투자 우선순위 변화, 광고 시장 위축, 해외 시장의 수요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오늘의 위기가 만들어졌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드라마 제작을 위한 인력풀, 즉 페이스트리가 채워지던 오븐처럼 다채로운 인재들이 점점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한국 드라마업계에 입문하고 싶다’는 젊은이들, 그리고 작가, 감독, 스태프들은 지금 고용 불안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에 시달린다. 대형 제작사는 해외 투자 유치와 글로벌 OTT 협력에 힘쓰는 동시에, 중소 제작사와 신진 창작자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간다. 이는 한 마을에 모여 앉아 저녁식사를 나누던 따스한 분위기가 저물고, 모두가 제 갈 길을 떠나는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드라마 제작 감소는 단순히 문화산업의 위기만이 아닌, 여행 같던 촬영지의 활력에도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K드라마가 소개했던 전국 각지의 장소들은 드라마 덕분에 여행 명소가 되고, 외국인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들이었다. 하지만 제작이 끊기면, 그 공간들도 마치 불 꺼진 무대처럼 조용해진다. 촬영을 계기로 소규모 식당이나 카페, 숙소를 찾아온 이들, 주변 주민들이 느끼는 활력마저 점점 퇴색된다. 드라마 생태계란 곧 문화와 공간, 사람과 경험의 연쇄이기에 이 위기는 어쩌면 전국의 골목을 채우는 따스함 한 줌이 사라지는 것과도 같다.
동시에, 업계는 국가 차원의 실질적 지원을 통해 ‘K드라마’만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다시 복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일본, 대만,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독자적 컬러의 드라마와 영상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오징어게임’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킹덤’과 같은 작품으로 세계를 뒤흔든 파장이 식자마자, 한 순간의 경쟁력을 안주했다가는 결국 남들이 앞질러가는 경주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변동하는 환경 앞에서, 단순 편수 복원이 아닌 작가와 제작사를 위한 창작 지원, 현장 인력의 안정적 환경 마련, 다양한 장르와 시도를 존중하는 풍요로운 분위기가 절실하다.
그간 K드라마가 일종의 ‘문화여행’이자 마음의 휴양지였다는 점에서, 이번 제작 감소의 흐름은 사회 전체의 공감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 다양한 세대와 국경을 넘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던 그 경험, 풍경, 감정들이 더 이상 멀어지지 않도록, 함께 걱정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계절, 그리고 K드라마의 다음 장면을 향해 다시 한 번 그 따뜻한 불이 밝혀지기를.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