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의 봄, 소리를 입다 — 제28회 서평제보성소리축제의 특별한 서사

봄의 초입, 보성군은 올해도 어김없이 풍경과 사람, 소리로 자신을 물들인다. 28회를 맞는 서평제보성소리축제는 햇볕의 윤슬처럼 오래 곁을 지켜온 지역의 서사이자 공동체의 목소리를 싣고 있는 귀중한 발표의 장이다. 이번 축제는 3월 마지막 주말, 차향 차분히 퍼지는 들녘을 배경으로 시작되어, 보성읍 청소년수련관과 그 인근 공원, 그리고 마을 골목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나눈다. 지역의 역사와 정취,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감각이 함께 호흡하는 순간이다.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복잡하게 쌓여온 삶의 레이어들을 노래와 연주, 낭독, 그리고 마을 어르신의 소박한 입담까지 불러내는 이 축제는, 어쩌면 지역의 내밀한 자화상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소리’라는 단어에 단순히 음악의 의미만이 담긴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정서에 흔적처럼 남는 공동체적 울림이 함께한다. 이번 해엔 젊은 시인들의 마을 산책, 보성 출신 작가와의 북토크, 지역 아동들 목소리로 가득한 문학 낭송 등, 세대와 감각이 섞이는 프로그램으로 진폭을 넓혔다. 축제의 공간은 확장되었고, 닫혀있던 책장이 처음으로 바람 속에서 넘어가는 순간이 관객 모두에게 전해진다.

보성만이 쓸 수 있는 시(詩)는 곧 ‘함께’의 정서라는 생각이 든다. 보성소리가 마치 오래 덜마른 잎새에 새겨진 이슬방울 소리처럼, 천천히 마음을 파고든다. 아이들이 읊는 시구에선 맛없는 학교 급식 대신 엄마가 싸준 도시락 냄새가, 어르신 구연에는 사라져가는 어릴 적 들녘의 풍경이 깃든다. 시인들은 본능처럼 이곳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잊힌 이웃의 안부까지 챙긴다. 축제장 한쪽에서는 오래된 감나무에 나이든 관객이 기대고, 다른 한켠에선 갓 스무살이 된 청년이 자신의 첫 시집을 내어놓는다. 일상의 틈새들이 ‘축제’라는 이름 아래 촘촘히 엮어진다.

다른 지역 축제와 달라진 점을 꼽자면, 올해 보성 서평제보성소리축제는 ‘경계’의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지역을 동네와 마을, 그리고 도시로 구분하는 손쉽고 익숙한 습관을, 이 작은 문학축제는 조용히 흔든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독립서점들과의 교류 프로그램, 각 장르별 북포럼, 연극적 퍼포먼스와 음악적 시도 등이 더해지며, ‘밖’과 ‘안’의 경계를 허무는 색다른 흐름이 형성됐다. 마을 주민이 아닌 이들에게도 문을 활짝 연 셈이다. 예년에 비해 관람객 수는 30% 가까이 늘었고, 수집된 피드백에서도 “취향을 존중 받았다”“삶과 예술이 가까워졌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 축제의 또 다른 주체는 ‘책’ 그 자체다. 책이라는 물성 안에 깃든 기억과 추억,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들이 입말과 활자, 그리고 무엇보다 소리로 살아난다. 보성군은 축제 내내 도서나눔, 작가 사인회, 작은 도서관 책장 나르기 행사 등을 통해 ‘사람과 책’을 일상의 한 가운데로 불러낸다. 기념관 한켠에 세워진 오래된 활판인쇄기가 시간을 거슬러 소리와 함께 움직인다. 책 한권을 통해 발견된 나의 조각과, 익명의 옆자리 관객이 공유하는 감정이 불현듯 하나로 합쳐지는 풍경 역시 이 축제의 묘미다. 문학이 ‘나’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라는 더 큰 파동이 되어 돌아온다.

혼자였던 저녁을 누군가와 함께 걷는 산책길처럼, 보성의 이번 축제는 지난 코로나 시절 ‘단절’을 넘어선 연대의 감정을 일깨운다. 언젠가 우리 안에 각인될 이 순간들은, 어쩌면 수년 뒤에 가족의 일기장, 친구의 SNS, 연인의 음성메시지로 변해 남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익숙한 풍경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처음 발견하는 온기일지 모른다. 꽃잎처럼 흩날리는 책갈피마다, 이번 축제 현장은 가만히 남는다. 그리고 끝내, 소리와 책, 인간 세 개의 줄기가 물처럼 합쳐지는 지점을 비춘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오래 머무는 정서. 그 느린 울림이 대도시의 거센 문화 이벤트들 속에서도 아슬하게 살아있다는 점, 이 자체가 한국 문학 공동체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다. 우리가 다시 이자리에서 소리를 듣고, 시를 나누며,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28년째 시작된 봄, 보성에서 들려온 축제의 진짜 의미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보성의 봄, 소리를 입다 — 제28회 서평제보성소리축제의 특별한 서사”에 대한 3개의 생각

  • 📚🌱 진짜 이런 축제들이 전국적으로 퍼졌으면.. 지역에서 문화라는 게 살아 숨쉬는 증거 아닐까요? 근데 매번 말로만 교류, 실제론 외부인들 눈요기용이었던 거 많은데 보성 소리축제는 좀 달라보입니다 🤔 새로운 패러다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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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접 참여하면 지역 공동체 그 특유의 따뜻함이 진짜 전해질 것 같아요. 서울 생활하면서 이런 감정 점점 잃어갔는데, 보성 축제면 정말 색다른 휴식 되겠네요. 시간 맞추어 내려가서 꼭 현장 분위기 느꼈으면 합니다. 행사 관련 정보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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