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길어 올린 회복의 메시지, 전남대 인문융합연구원의 실험

붓끝에 맺힌 한 방울의 고요함이 있다. 전남대학교 인문융합연구원이 우리 곁으로 불러낸 한국 고전소설의 또 다른 얼굴, ‘리질리언스(resilience)’. 그 말의 울림은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견고하게 우리 삶의 바닥을 두드린다. 거대한 파도가 쓸고 간 뒤에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함. 2026년의 6월, 문화라는 바다에서 우리는 한국 고전소설에 담긴 회복의 씨앗을 새삼 발견한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단지 이야기의 재미, 혹은 서사의 미학만이 아니다. 삶의 상흔 속에 숨어 있는 ‘복원력’—파괴에 대한 반동, 절망 끝의 용기, 불가해한 상실 앞의 어깨 펴기. 이 모든 것이 조선의 선비가 필사적으로 써내려간 글에서, 여인들이 지닌 희미한 듯 당당한 저항의 행간에서, 상인의 꿈에서, 귀신의 응어리에서도 두드러진다. 연구원들은 딱딱한 이론의 외피를 벗고, 고전의 인간 군상들이 각자의 불행을 끌어안고 점차 나아가는 모습을 추적한다. 패배의 시대, 그럼에도 살아내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것이 고전의 진짜 울림이라는 제언이다.

단순한 학문적 성취가 아니다. 이목을 끄는 대목은, 리질리언스라는 현대적 심리학 용어가 한국의 고전적 정서와 닿아 있다는 점이다. 외딴 섬마을, 무너진 꿈, 사랑의 부재—이런 소재들이 실패와 회생의 렌즈를 통해 다시 쓰인다. ‘춘향전’의 이몽룡이 떠나간 뒤 남겨진 춘향의 절개마저도, 단순한 미덕을 넘어서 지극한 유연성—뿌리 깊은 견디기의 힘—으로 읽힌다. 심청, 장화홍련, 홍길동, 심지어 흥부와 놀부의 가족사까지. 이들의 고난은 돌이켜보면 단순한 서사적 장애가 아니라 끝내 인생을 다시 붙잡는 실마리다.

고전소설의 세계는 늘 크고 작은 상처로 점철된다. 가난, 이별, 사회적 억압, 죽음과 재생.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짓눌렀던 부조리들이 저마다의 주인공을 시련의 바다로 밀어넣는다. 그러나 낡은 저잣거리와 궁궐 담장마저도, 그 안의 인물들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 잔잔히, 때론 격정적으로 맞서는 이들의 모습에서, 연구원들은 불굴의 ‘복원력’이란 테마를 길어낸다. 고전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심리적 자원일 수 있다는 주장. 그것이 바로 이 연구가 던진 여운이다.

문학을 바라보는 전통적 해석, 즉 도덕적 교훈이나 역사적 맥락을 읽어내는 단계를 넘어서, 소설의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이것이 이번 연구의 새로운 시도다. 고난이 인간성을 갉아먹는 잿빛 분위기가 아니라, 그 틈에서 다시 피어나는 ‘나아감’의 흔적에 눈을 떴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문학적 회복” 담론이 넓어지는 와중에, 한국적 관점에서 리질리언스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움직임으로 각광받고 있다.

나아가 지금의 우리에게 이 논의가 던지는 감정적 울림은 확실하다. 코로나19 이후 반복된 사회적 위기, 세상의 잦은 붕괴와 재건의 와중에 리질리언스는 한낱 유행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자각이 되어간다. 고전의 언어로부터 번져 나오는 잔잔한 소생의 힘, 그것만으로 때로는 오늘의 현실에 작은 숨을 불어넣는다. 소설 속 집착, 기다림, 실망과 용서—all이 하나의 파도처럼, 실패의 자리에서 출렁거리는 생의 의지로 다가온다.

이번 연구는 학계 내부에서만 회자될 ‘지적 이벤트’가 아니다. 고전의 허망한 대사나 오랜 단선적 결말들이 사실은 오늘의 우리와 닮은 심리적 극복의 궤적이라는 사실. 이 점은 문화 소비자의 정체성에도 소리없이 스며든다. 책을 덮고 나면 남는 건 도식이 아니라 ‘견디는 법’이다. 시대와 신분, 이름과 소망을 뛰어넘어, 우리는 그 옛 인물들의 작고 단단한 심장을 닮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동안 고전을 보는 관성이 ‘답습’의 미학이었다면 이제는 ‘생환’의 미학으로 바뀔 때다—상처받고도 결국 다시, 오롯이 살아가는 힘.

리질리언스는 거대한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작은 복원, 잊힌 기억, 사소한 일상 회복.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고전소설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오늘의 아침, 흔들리는 마음 한구석에도 그 조용한 용기를 드리워 본다.

정다인 ([email protected])

고전에서 길어 올린 회복의 메시지, 전남대 인문융합연구원의 실험”에 대한 4개의 생각

  • tiger_voluptatem

    리질리언스라… 고전소설에서 이런 분석이 나올 줄 몰랐음🤔 근데 솔직히 요즘 사회가 회복력 뭐 이런거 말만 하고 실제론 바뀌는 게 있나 싶다🤷‍♂️ 근본은 안 바뀌고 늘 책에서 의미 찾아내는 느낌;; 근데 또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 울컥할 때 있지… 옛사람들 이야기, 이젠 조금 더 천천히 읽어봐야겠음. 전남대 연구진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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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다들 리질리언스 찾는 거 같아요… 좋은 기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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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근데 진짜 요즘 회복력 안되는 사람들 투성이긴하다ㅋㅋ 고전 읽고 다들 버텨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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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bbit_activity

    고전이 답인가…다시보니 좀 새롭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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