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작가 한만수, 대하소설의 거장을 보내며
최근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대하소설 작가, 한만수가 별세했다. 1935년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 작가로 살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문학으로 새긴 인물. 대표작 ‘금강’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 인간 군상의 복잡한 삶과 정체성을 서사적 격조와 세밀한 인물묘사로 풀어낸 대하의 물결 같았던 작품이다. 그의 죽음은 단지 한 사람의 타계가 아닌, 오늘날 한국문학계가 유지해온 ‘진중한 이야기 서사’의 지형이 점차 좁아지는 현실과 맞물려 아쉬움을 남긴다.
한만수의 ‘금강’은 해방과 전쟁, 분단의 시간을 거친 이 땅의 사람들, 그들이 세계와 역사 앞에서 어떻게 자리를 지키며 살아갔는지를 근본 질문으로 삼았다. 농민·지식인·군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군상은 금강이라는 공간 안에서 저마다의 운명에 맞서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여러 결은, 단순히 사건을 재현하는 걸 넘어서 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묻는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연재되어 출간된 ‘금강’은, 무겁지만 먹먹하게 다가오는 시대적 숙명과 개인의 비극이 교차하며 한국문학이 감당해온 시대의 진실들을 재확인시켰다.
이 소설은 한국 대하소설 전통을 잇는 작품이면서, 전통적 문체와 현대적 사유의 긴장감이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그의 문장은 때론 나지막하게, 때론 거칠고 격정적으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현실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인물들의 내면 심리 서술은 마치 감독이 장면을 포착하듯 세부적이고 집요하다. 김훈, 조정래 등과 달리 한만수는 ‘장황한 설명’보다 함축적 대사, 사소하지만 결정적 선택에 무게를 준다. 그래서 ‘금강’을 읽다보면 알게 모르게 서늘한 침묵의 옆면, 그리고 인물들이 지닌 복합적 동기까지 느껴진다. 이는 한만수 자신이 평소 밝힌 ‘문학은 시대를 견디는 인간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신념과도 맞물린다.
문단에서의 태도도 철저한 ‘관찰자’였다. 인터뷰나 외부 활동은 드물었지만, 신작이 나올 때마다 후배 문인과 평론가, 주요 문예지에 독특한 진폭을 던진 인물이었다. 본인의 체험과 취재, 소박한 일상관찰에 근거를 두되, 사회적 발언이나 책에서 쉽게 우국지사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는 오히려 메시지의 무게를 키웠다. 그의 또다른 작품 ‘어느 진혼가는 흐린 날에도’ 역시 시대와 인간이라는 테마를 더 압축적으로 녹여낸 소설로 평가받는다. 2020년대 들어 ‘대하소설’의 위기의식, 서사적 소설의 독자층 축소라는 화두가 논의되는 가운데, 한만수의 사망은 이 장르의 ‘황혼기’가 맞닥뜨린 구조적 한계를 다시금 체감하게 한다.
문화부 영화·드라마 담당 기자로서 여러 감독들과 문학을 접목해왔던 경험상, 한만수의 작품 세계는 원작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2차 해석과 영상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진다. 만일 한만수가 지금 살아 있었다면, 지난 몇 년 사이 OTT의 폭발적 성장이 낳은 역사극·시대극 리메이크의 흐름에서 ‘금강’의 영상화 가능성은 어땠을까. 김은희, 박찬욱, 연상호 등 새로운 세대의 창작자들이 이 대하서사의 의미를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금강’만의 묵직함, 서사의 완급과 인물의 충돌은 기존 K드라마가 자주 보여온 편의적 ‘스펙터클’과는 결이 다르다. 바로 이 지점이 현재 넷플릭스·티빙 등 플랫폼들이 지향하는 ‘IP’ 개발과 한국문학이 만날 때 가장 극복이 어려운 장벽이기도 하다.
한만수의 문학은 ‘역사와 인간 사이의 거리’를 늘 궁극적으로 질문한다. 그는 결코 영웅도 아니고, 전형적 희생자만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좌절·욕망 모두에 공감하며, 굴절된 시대정신이 만들어낸 삶의 미로를 정직하게 기록했다. 그의 언어는 조용했지만, 그 침묵 속에 담긴 세대의 비명이 소설의 행간마다 흐르곤 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대하소설이 해낼 수 있었던 인간 연구의 깊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한만수의 장광설 같은 문장, 차분한 시선, 빠르지 않은 전개는 마냥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살아내야만 하는 역사와,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의 이유—이것이 누군가에게 여전히 울림을 주고 있다면, 한만수의 죽음이 품은 의미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대하의 물줄기는 멀어진 듯 보이지만, 그 물길의 흔적마다, 작가의 문장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사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이렇게 또 장르 하나가 저물어 가네요. 한국문학계에 빈자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더 좋은 시대, 더 솔직한 작품이 나오길 바랍니다.
문학계에 이런 비보가 또 오네요. 한만수 작가 덕분에 우리 문학의 방향이 넓어졌다고 생각해요ㅋㅋ 후대 작가들은 더 많은 시도를 이어가길!
이 작가가 말년에 신작 한 번 더 내줬으면 어땠을까. 금강 같은 서사 요즘 살아남기 힘들지. 다들 빠르고 자극적인 걸 좋아해서… 🤔 그래도 이런 거대한 줄기 사라지는 건 좀 씁쓸해. 한만수나 조정래 세대 지나가면 남는 건 뭐지 싶음. 과연 문학계는 다음 세대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걸까?
한 세대가 끝났다는 느낌이다. 줄임말만 넘치는 시대에 누가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금강은 남지만, 한만수 자체는 대체 불가였음. 누가 이어받을지 걱정이 많이 드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