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육아’ 짊어진 할머니들, 손주 돌봄의 두 얼굴

서울 강서구의 작은 아파트, 오전 8시 반. 김정자(71·가명)씨는 학교에 등교하는 손주에게 유치원 가방을 메워주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딸이 싱글맘으로 일터에 나간 뒤 벌써 4년째, 김씨의 하루는 손주 돌봄으로 시작해 손주로 끝난다. 이제 ‘황혼 육아’라는 말조차 식상해질 정도로, 우리 사회에선 퇴직한 노년의 삶이 다시 자녀 부양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6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가정은 무려 96만 가구에 육박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할머니였고, ‘황혼 육아’에 힘을 보태는 여성 노인은 남성보다 두 배가 넘는다.

누가, 왜, 어떤 마음으로? 이 질문을 안고 현장을 다녔다. 육아는 과연 ‘모성’이나, ‘할머니의 의무’여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돌봄 공백과 복지 체계의 한계를 할머니들이 맨몸으로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의 최전선엔 기관도, 제도도 아닌 사람, 그것도 노인이 있다. 손주들을 돌보며 인생 2막을 보내는 이들은 육아의 기쁨과는 별개로, 본인의 건강·노후‧관계 등 삶의 모든 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사회학자 김영란 박사는 “황혼 육아는 자녀세대가 처한 현실(맞벌이, 비혼, 이혼, 복지 부재 등)을 모두 끌어안게 만든다”고 진단한다.

김씨의 사례는 특별하지 않다. 단독 사노인 부부 중 아내가, 여성 노인은 ‘주면견양자’로 변신한다. 실제 돌봄 노동의 73%가 여성 고령자에게 집중됐다. 남성 노인이 손주를 돌보는 비율은 여전히 낮다. 출근을 준비하는 딸의 푸념, 학교생활에 지친 손주의 투정, 도시락과 간식 준비, 방과후 돌봄까지 이어지는 일상. 여기에 고혈압 진료를 받던 병원 약속,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 뒷전이 된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피로가 되고, 그 피로는 죄책감과 괜찮지 않은 자신의 몸으로 돌아온다. 2025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손주 육아에 매달리는 할머니의 67%는 ‘심각한 신체적 피로’와 ‘경제적 부담’을 호소했다. 54%는 또래와의 관계 단절, 정서적 외로움까지 토로했다.

2020년대 후반을 지나며 자녀 돌봄 공백은 더 심화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기본형이 됐고, 이혼·비혼 등 가족 형태도 다양해졌다. 어린이집 대기, 초등 저학년 돌봄교실 부족, 오후 돌봄 단절… 사회적 대안은 ‘조부모 돌봄’의 이름으로 방치돼 왔다.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젊은 부모들의 ‘고맙다’는 말, 그러나 그 뒷면엔 자녀세대의 소득 불안‧부모세대에게 떠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씨 또한 “내가 아프면 걱정부터 한다. 딸이 일 못 가면 월세가 밀릴까봐. 손주는 누가 보지 싶어서”라며, 마음의 짐을 털어놓았다.

정부는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영아기 아이돌보미, 부모 교육, 맞벌이 돌봄 지원 등 여럿이지만 실효성은 제한적이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많다. 할머니 세대는 공적 돌봄과 사적 돌봄의 경계에 놓여 어떤 제도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회색지대에 살고 있다. 일부 지자체가 도입한 ‘조부모 수당’ 역시 상징적 수준, 실제 경제적 지원은 미진하다. 그래서 김씨 같은 할머니들은 병원 입원, 스트레스성 질환, 사회관계 단절 등 ‘숨은 후유증’에 노출된다. 무엇보다 ‘여성 고령자’ 특유의 자기돌봄 포기가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된다.

어쩌다 이런 구도가 고착된 것일까. 돌봄 노동을 가정 내 여성, 특히 할머니에게 맡기는 문화, 국가복지의 한계, 그리고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기대수명만 늘어난 사회 현실.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이미 전체 인구의 23%를 넘겼고, 경제활동을 연장하거나 손자 육아까지 떠맡는 고령여성의 부담 누적은 위험 수위로 치닫는다. 일터와 가정, 공동체 시간이 모두 파편화된 시대에, 누구도 이 삶의 균열을 매만지지 않았다.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 실질적인 지원, 그리고 노년의 자기실현을 되찾아주는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황혼 육아’에 떠밀린 할머니의 하루는 사실상 우리 복지, 가족, 노동, 젠더, 그리고 노년의 존엄에 대한 사회적 맞춤법을 묻는다.

누구라도 되고 싶은 노년, ‘이제는 내 삶’이라고 말해도 괜찮은 시대. 그 시작점에 지금 우리 곁의 할머니들이 있다. 손주 손을 잡고 집 앞 놀이터에 선 그 손, 그 마음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지켜줘야 할 때이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황혼 육아’ 짊어진 할머니들, 손주 돌봄의 두 얼굴”에 대한 4개의 생각

  • ㅋㅋ 이러니까 애 안 낳겠다 하지. 할머니든 부모든 전 국민 2교대야 뭐야. 대한민국 진짜 대단하다. 💬 복지 뭐하냐 또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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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봄의 부담이 왜 항상 여성에게 돌아가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기사네요. 근본적인 인식 변화와 정책 보완 모두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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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니 저출생이 줄나나봄 ㅠ 정부는 엉망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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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사회적 약자에게만 계속 희생 요구하는 구조🤔 정부는 보여주기용 수당, 당사자는 허리 휘고… 현장 목소리 좀 들으세요. 할머니들도 자신의 삶 살 권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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