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스코프] 전기차는 정말 친환경일까…②승부는 자동차가 아니라 전력망에서 난다
전기차가 친환경 이동수단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지만, 그 논리의 구체적 기반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와 정부, 에너지 기업들 사이에서는 전기차가 과연 친환경적 선택인지, 진짜 승부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재검토 움직임이 늘고 있다. 당장 내연기관 대비 주행 중 탄소배출이 적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배터리가 충전되는 전력의 원천, 그리고 전력망의 에너지 믹스가 친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요구되고 있다.
국내 전력 생산에서 석탄 및 천연가스 등 전통적 발전 비중이 여전히 높다는 사실은 전기차의 ‘환경성’ 논의에서 필수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2025년 기준, 한국의 전력 생산에서 석탄화력은 28.7%, LNG 복합 화력은 27.1%, 신재생에너지는 약 21.8%를 차지한다. 글로벌 전기차 ‘빅3’로 불리는 테슬라, BYD, 폭스바겐조차 각국의 전력믹스와 탄소 저감 정책 변화에 따라 차량 전 주기 배출량 데이터 값을 매년 수정하고 있다. 제조 공정에서의 CO₂와 희소자원 채굴, 배터리 생산의 에너지 소요량과 충전 인프라에서 소모되는 전력까지 감안하면, 전기차의 탄소중립 실현은 단순히 자동차 산업의 혁신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시장 측면에서 보면,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은 2023~2026년 사이 EV 시장 점유율 확대와 동시에 RE100 등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해외공장 RE100 도입률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지만, 국내 본사의 경우 전력망 한계로 속도를 늦췄다. 테슬라는 캘리포니아주 공장 기준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이 59%까지 높아졌으나, 차량 소비자가 충전을 위해 이용하는 전력의 탄소 함량은 지역별로 크게 차이난다. 폭스바겐 임원진은 최근 “완전한 친환경 전기차는 2040년 이후나 가능하다”는 신중론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전 세계적인 전력망 탈탄소화 없이는 전기차 전환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입장이다.
산업 구조적으로 보면, 전기차의 산업 파급력은 자동차 제조업에서 한정되지 않는다. 배터리 셀, 전력변환 부품, 충전기 제조업체, 신재생에너지 발전, IT기반 에너지 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기회와 부담이 맞물린다. 국내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대기업이 글로벌 얼라이언스와 함께 친환경 인증(그린에너지 이용 비율 증명)을 강화하고 있으나, 전력공급자와 협업 없이는 지속적 확장이 어렵다. 또한, 대규모 충전 인프라 구축이 기존 전력망에 미칠 충격과 수급 불안정 등도 실제 친환경 효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산업계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전력의 전기차 특화 요금제 및 ESS(에너지저장장치) 연계 정책이 아직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산업 현장에서 들린다.
전력망의 특성이 전기차의 전주기 배출량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면서, 각국 정부와 기업은 더 빠른 전력 탈탄소화와 그리드 혁신을 앞다퉈 모색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전면 금지 정책과 더불어 전력포트폴리오 내 재생에너지원 비중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역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로 전기차 구매 지원금 지급 조건에 배터리·완성차 생산뿐만 아니라 전력망 내 저탄소 발전 원천 비중을 명기했다.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30%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으나, 산업계에선 “속도와 수익성의 균형”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은 전기차 판매가 압도적이지만 실제 석탄 발전 의존도가 높아 차량 전주기 탄소 저감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북유럽 일부 국가는 수력·풍력 등 실질적 무탄소 전력 공급이 높아, 현지 전기차는 명실상부한 친환경의 이점을 누린다. 그 결과 전력망 친환경화가 지역별 전기차의 환경 기여도에 결정적 변수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세계 전기차로 인한 탄소 저감 량의 60% 이상이 국가별 전력믹스 개선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기업 실적 측면에서는, 2026년 상반기까지 전기차 제조 기업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친환경 인증과 함께 에너지 관리 솔루션 매출이 급증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는 각각 배터리 생산 탄소저감, 신재생 연계 솔루션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차 충전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력 공급의 친환경 전환속도에 따라 수익성과 투자여력이 결정될 것이란 재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IT 및 제조 업계에서는 인공지능 기반 전력수요예측, 실시간 탄소값 표시 등 에너지 관리기술 도입이 전기차 산업 생태계에 새로운 경쟁 지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향후 전기차 시장은 단순한 ‘자동차 산업’이 아닌 ‘에너지-IT-인프라 융합 산업’의 구조적 전환기 위에 있다. 충전 요금 변동, 전력망 혼잡, 신재생 발전 잉여분 활용, 실시간 에너지 사용 데이터 공개 등은 전기차의 환경효과를 논할 때 수치 이상으로 본질적 쟁점이다. 정책적으로도 전기차 확산이 곧 친환경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자동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전기차 시장 경쟁력은 탄소중립 시대에 맞춘 전력망 혁신의 속도와 질, 그리고 에너지 생산·유통·소비의 전(全)주기적 접근에 달려 있다. 정부와 기업, 소비자 모두가 자동차를 넘어선 ‘에너지 생태계’의 총체적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산업계 현주소다.
— 조민수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