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건네는 기억의 꽃다발, 부산여성문학인협회 축전서 피어나다
9월의 바람이 남쪽 바다에서 밀려든다. 이 바람 속엔 부산여성문학인협회가 수놓은 ‘여성문학축전’의 잔향이 잦아든다. 올해, 부산의 골목과 항구가 알록달록하게 물들던 그 자리에서, 한 시인의 뜻깊은 목소리가 빛을 냈다. 이혜선 시인. 그녀는 이번 한국여성문학상의 새 이름표를 달았다. 삶과 세월을 견녀처럼 엮어온 시편들이 고요하고도 단단한 영예를 맞이했다.
이혜선 시인은 이번 축전에서 오롯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낸 세월과, 문학공동체에서 씨 뿌리고 거둔 시간의 결실을 안았다. 축전 현장에는 부산과 경남의 여성 작가들이 울림있게 모였다. 푸른 바다와 오래된 골목만큼 지난 시절 여성의 침묵과 목소리를 써내려온 작가들이었다. 이 자리의 시간은 단순한 시상식이 아니라, 함께 겪은 세대의 고통과 희망을 건네는 위로였다. 마치 촉촉한 봄비처럼, 각자의 가슴에 또다시 꽃이 필 수 있음을 들려주었다.
부산여성문학인협회의 축전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남성 중심 문단의 높은 담장, 시대의 무성한 통념들. 이 속에서 여성 문인의 존재감은 언제나 늘 투명하게 혹은 조용하게 빚어졌다. 80년대 가슴 속엔 “말할 수 없는 것”들에게 문학이 손을 내밀었고, 90년대 개방의 숨결 속에서도 ‘진짜 여성의 언어’는 여전히 탐색되어야만 했다. 올해 한국여성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부산지역에서 약동하는 새로운 작가군이, 다양하고 구체적인 여성의 세계를 그리며 자신의 목소리로 자리 잡고 있다는 신호도 찍혔다.
이혜선 시인의 작품들은 찬물 한 대접 같은 정갈한 슬픔과, 언뜻 반짝이는 생의 엑기스를 안고 있다. 그녀는 여행, 가족, 잊힌 일상 속에서 길어 올린 슬픔과 희망을 『이름 없는 섬이 된다 해도』 같은 시집에 응축시킨다. 그녀의 언어는 목마른 이에게 건네는 작은 연등 같고, 때로는 자기 안의 그림자를 보듬는 부드러운 손길이기도 하다. 부산여성문학인협회장 이진주의 말처럼 ‘이 시상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부산, 더 나아가 전국의 여성문인들에게 미래의 등불’이다. 협회 회원들과 시민이 함께한 축전 현장엔, 여성문학의 현재와 미래가 조우하는 감각이 고요하게 감돌았다.
다른 여타 문학상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없이도, 여성문학축전은 꾸준히 장인의 손길처럼 문단 구석구석 스며든다. ‘여성문학’은 흔히 주변부로 여겨지지만, 이제 거꾸로 시대의 중심에 말없이 스며드는 힘이 있다. 지역문학의 희미한 불빛이 전국적 확대로 이어지는 이 순간, 이혜선 시인의 수상은 지역표방적 한계가 아닌 ‘작은 연못에서 부산 바다로, 결국은 한국 문학이라는 큰 무대로 흐르는 강물’을 상징한다.
한겨울 태풍 앞에도 바다의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여성 문인들이 지난 40여 년간 써내려 온 파장은 거친 세상의 돌출된 생채기를 감싸안는 물결이다. 이제 ‘부산여성문학인협회’라는 이름 아래서 축전은 한때의 사건이 아니라, 긴 호흡의 역사적 궤적이 되었다. 또한 이혜선 시인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여성들이 각자 자기 목소리를 발견할 자리를 꿈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부산의 가을밤, 골목마다 손때 묻은 시집 한 권씩 떠넘긴 듯한 평온한 기운이 이 도시를 위무한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반복되는 삶에, 여성의 언어로 기록된 작은 시편들이 다시금 이정표가 되어 줄 테다. 문학적 연대와 공감, 그 힘에 담긴 희망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