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를 위한 서평] 유라시아 3차 패권전쟁, 미국만 역사를 잃었다

‘유라시아 3차 패권전쟁, 미국만 역사를 잃었다’라는 이 분명하고 단호한 문장에는 끝내 냉전과 세계화 시대를 거친 인류의 허망과 미련이 녹아있다. 1%의 날카로운 독자들을 위한 이 서평은, 페이지마다 마치 전장의 먼지와 땀방울이 덕지덕지 붙은 지도처럼 불편하고 묵직하다. 유라시아, 검은 땅 위에 다시 한번 패권의 늪이 펼쳐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목격하는 것일까. 기자로서, 아니 문화부장이라는 이름 아래 이 시대의 죄책감을 두 눈으로 읽으며, 한 권의 책이 말하려는 결말이 단순한 지정학의 도식만은 아님을 내 안의 잔잔한 파도로 받아들인다.

이 책의 저자 윤홍식 교수는 단단한 학자적 시각을 바탕으로, 패권전쟁의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패배자—이 시대의 미국—을 집요히 파고든다. 잠시만 귀를 기울이면 금속성 침묵처럼 느껴지는 미국의 외교와 지정학, 그 뒤엉킨 시간들을 독자로 하여금 차갑게, 그러나 뜨겁게 비집고 들어가게 만든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중국의 일대일로 야망, 유럽의 분열, 그 모든 조각들이 결국 미국이라는 ‘한때의 시간’을 향해 날아간다. 화려했던 20세기의 미국, 세계 경찰이자 자의적 민주주의의 화신이었던 그들은, 지금 ‘역사’라는 큰 그림 속에서 어쩌면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른다.

서점에 꽂힌 이 책을 처음 집었을 때 내게 느껴졌던 것은 예상도 못한 슬픔이었다. 어쩌면 한 시대의 몰락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폭풍우처럼 찬란한 것이 아니라, 가을 빗소리 같은 우수와 건조함으로 찾아오는지 모른다. 저자는 수십 년 전 미소 냉전에서부터 지금의 신(新)대립까지, 미국이 얼마나 부유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쉽게 취해 있었는지를 일깨운다. 세계를 넘어선 영향력, 문화·군사·금융의 승리자였던 그들이, 마침내 오늘 우리 앞에서 ‘패권전쟁의 역사적 주인의 자리’를 잠시 내려놓는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시대의 변화보다 더 진한 감정을 남긴다. 마치 잃어버린 시절의 옛 연인을 바라보듯, 사라진 미국의 시간 앞에서 우리는 복잡한 쉼표를 빚는다.

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미국의 전략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이 질문은 정치적 질문이 아니라, 문화의 지층까지 스며드는 아픈 반성이 된다. 롱 텀(Long Term)과 쇼트 텀(Short Term)이 뒤엉킨 지정학의 현장에서, 미국은 선택과 집중이 빠르고, 순간의 이익에 목을 댔다가 결국 시간의 대가를 지불했다. 유럽은 믿음을 잃었고, 중국은 그림자 속에서 실리를 챙긴다. 그리고 러시아는, 다시 한번 야만의 카드를 꺼내 들며 침묵하는 앵글로색슨 세계에 조용히 도전한다. ‘역사적 패배’의 그림자. 저자는 이를 묵직한 은유로 돌려준다. 파리한 달빛 아래, 침묵하는 올드타운처럼, 미국은 역사의 심야에 홀로 남겨져버렸다.

실존하는 시대의 현장으로 뛰어든 작가는, 철저히 관찰자의 태도로 사건을 나열하지만, 결코 감정선을 감추지 않는다. 세계의 흐름은 타인의 것이 아니며, 결국 우리 각자에게 다시 닿는 소용돌이란 걸. 현대인은 이 책을 통해, 지정학적 거인들도 결국 하나의 시대적 감정—두려움과 회한—에 휩싸인 채 달려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손에 쥔 파편처럼, 미국만이 역사를 잃은 게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 서 있는 우리도, 사실은 그 상실의 시간 아래서 조용히 울고 있었을지 모른다. 국제질서의 재탄생 앞에서, 한때의 패권국가 미국은 오늘도 과거로 떠밀려간다. 그것이 친구였든, 상대였든, 역사의 엄연한 교차로에서 우리는 함께 지나간 흰 파도를 배웅한다.

한 권의 책이 현실정치와 삶을 흔드는 거대한 소용돌이로 읽힐 수 있다면, 바로 이런 문장과 서사 때문이다. 저자의 시간표 위에, 우리의 고요한 상념 문구릴처럼 쌓이고 있다. 역사란 늘 이겼던 이들이 아니라, 언젠가는 패자가 되는 모두의 것. 그 시간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지금을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다시 얻어야 할지를. 미국만 역사를 잃은 것이 아니다. 심야의 독서, 사라진 시간의 감정에 잠시 눈을 감는다. 다음 장의 세상은 어떤 문장이 이어질까, 숨을 고른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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