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 날’에 만난 부모와 자녀, 서로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도시

화창한 가을, 화성특례시에는 특별한 만남이 이어졌다. 2026년 9월, ‘정신건강의 날’을 맞이해 마련된 대시민강좌에 모여든 이들은 부모, 자녀, 그리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얼굴들이었다. 행사장 한켠, 열 살 딸아이와 손을 꼭 잡은 김지현(38)씨는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놨다. “맞벌이 부부라 얼굴 볼 시간도 부족해요. 아이는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저는 지쳐서 제대로 말을 못 걸겠고… 이런 소통 자리가 있으니 속이 조금 풀리네요.” 그녀의 이마엔 염려가 서렸지만, 작은 웃음이 어렸다.

이번 강좌에서 다뤄진 주제의 핵심은 ‘부모와 자녀, 서로 이해하는 진짜 대화의 시작’이었다. 화성정신건강복지센터 주최로 열린 이 강좌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소통 장벽을 허물도록, 전문가와 당사자가 직접 마주하는 놀이터였다. 정신과 전문의 강의부터 아이의 자존감 회복 워크숍, 1:1 상담까지, 준비된 프로그램은 현실의 고민 위로 따뜻하게 손을 내밀었다. 전문가들은 단호했다. “부모님, 건강한 소통은 한 번 대화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틀려도, 멈추지 마세요. 아이 역시 어려움을 겪는 중입니다.”

몇 년 새, 정신건강 문제가 등굣길보다 더 가까워졌다. 교육계와 복지 현장은 “코로나 이후 우울, 불안, 소외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많다”며 위기 신호를 알렸다. 통계적으로도 청소년 우울증, 불안장애 진단은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아이 하나가 힘들 때, 가족 전체가 흔들린다. 화성에서도 새 학기 적응 실패, 시험 스트레스, 가족의 무관심 등 다양한 사연이 표류해왔다. 자신을 꾸짖는 부모, 바쁜 일상에 점점 소원해진 대화…. 모두 우리가 경험한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성특례시의 이번 강좌는 보여주기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 사례와 구체적 해결책은 ‘정책’이 현실에 닿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일깨웠다. 상담을 받은 이모(45)씨는 “기업강의, 상담센터 문턱이 높았는데, 동네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몰랐다”며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부모-자녀 정신건강 프로그램이 수년째 시범사업에 머무르는 곳도 많다. 복지, 교육행정, 지역사회가 한 발자국 더 협력하지 않으면, ‘하루짜리 강연’에 그치고 만다. 화성특례시는 ‘연속 모임’ 고리도 만들었다. 참여자들 간 연락망을 구축해, 위기 때 서로에게 기댈 생활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현장 관계자는 “가족들이 행사가 끝난 후 혼자가 아니게끔, 지속 상담・소모임에 참여할 길을 열었다”고 귀띔했다.

작년 경기남부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 시도 신고가 전년도 대비 19% 증가했다. ‘정신건강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이제는 모두가 체감할 수밖에 없다. 도심의 자살 예방센터, 아동복지센터 방문도 해마다 오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부모는 ‘문제가 심해지기 전까진’ 뾰족한 도움을 구하지 못한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등을 돌리다, 가족 모두 상처만 남기는 일이 반복된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내 탓인가’, ‘아이 탓인가’를 놓고 자책하거나, 외면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결국 ‘함께 아파하고, 먼저 손 내미는 공공의 공간’이 필요하다.

화성특례시의 실험이 의미 있는 첫걸음인 이유가 여기 있다. 행사는 강연이 끝난 뒤에도 ‘지속 이어지는 전화상담’, ‘가족 내 소통 지침서 배포’ 등 다채로운 사후 관리로 이어졌다. 현장에선 지역 아동청소년 센터-정신건강복지센터-학교가 연결되어, 복합 사례를 함께 해결하는 협력망도 만들어졌다. 평범한 이웃이 단 하루라도 고립감에서 벗어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료’를 만나는 것, 그 자체가 희망의 불씨다. 아이와 교사, 학부모, 상담사까지 이물림 없이 만나며, 우리는 ‘관계의 틈’을 좁힐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 시도가 한 번의 이벤트로 멈춰서는 안 될 이유는 분명하다. 정신건강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가 부러질 때 가장 빨리 신음한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의 짐을 홀로 견디다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사회가 더 넓은 품으로 감싸야 한다. 화성특례시의 도전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징후,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아픔까지 함께 듣고, 넘어지고, 손잡아 일으켜줄 수 있는 사회. 이런 연대의 나날을 더 많은 도시와 마을이 배워가길 바란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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