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상무 시민구단 전환 무산, ‘약속’과 ‘책임’ 사이에 선 K리그의 현실

K리그1 김천 상무의 시민구단 전환이 무산됐다. 클럽 차원의 “깊은 유감” 표명은 그간 항구적 연고 정착, 지역밀착형 구단으로의 변신을 꿈꿨던 김천과 지역 팬들에게 한 마디로 뼈아픈 신호탄이다. 기존 군 구단체제에 남기로 한 결정 뒤엔 행정기관의 미온적 태도와 현실조작적 타협, 그리고 한국 프로축구 시스템에서 반복되는 ‘책임 없는 약속’의 씁쓸한 관성이 맞닿아 있다.

김천 상무는 특수한 위상의 팀이다. 군 복무를 병행하는 선수들을 수급하며, 매년 급격한 전력 변화와 떠남-도입이 반복되고, 이에 따른 팀 전술 완성도 저하가 상존한다. 그럼에도 지난 시즌, 전술적 전환점과 조직력 상승을 바탕으로 잔류에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군 구단체제는 경기력과 시장성 양면에서 구조적 한계가 명확했다. 시민구단 전환은 지난 수년간 지역 사회와 클럽 모두 탐색했던 ‘패스의 방향 전환’이었다. 리그 내 타 시민구단들의 사례―성남, 대구, 광주 등―와 비교해도, 김천 역시 오랜 시간 팬과 지역 자본을 투입해 프로클럽의 지역기반 확장을 후보로 삼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합의’는 구체적 실현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시청 및 관계 기관의 소극적 입장, 클럽 운영비 및 자치단체 재정 부담, 나아가 K리그 시민구단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병렬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타이밍상, 2026시즌이 시민구단으로의 전환 골든타임이라는 시기적 맥락이 있었기에 상무 구단과 팬의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축구에서 빠른 전환이 낳는 공간 확보처럼, 최근 몇 년 간 김천이 보여줬던 경영 측 변화와 사회적 성과는 시민구단 도약의 명분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눈여겨 볼 점은 ‘책임’이라는 단어다. 김천이 전환 의사를 밝혔을 때, 지역사회와 일부 지방정치권은 긍정의 메시지를 던졌으나, 실제 예산 확보와 운영주체 명료화 등 핵심 이행 과제에 있어선 번번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소극성에 머물렀다. 이는 4-3-3 포메이션의 미드필더가 수비와 공격 사이에서 포지션을 확실히 안 잡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만큼 공격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약속의 무게”란 결국, 팬과 구단, 나아가 지역문화의 발전 가능성 위에 실질적으로 놓여야 한다.

전술적으로 보면, 김천의 현재 모델은 원 포인트 전술로 볼 수 있다. 임무를 마치고 떠나는 선수, 새로 합류하는 선수들로 인해 지속적 전술 업그레이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같은 시민구단 모델인 대구FC, 광주FC 등은 청소년 유스, 지역 인프라와 연계해 ‘완성형 빌드업’을 시도할 수 있었다. 김천이 시민구단으로 바뀌었다면 장기적 플랜에 따른 리크루팅-전술연계-지역밀착이라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실제로 잉글랜드 리그에서도 중소도시 기반의 시민구단 모델이 장기적으로 탄탄한 피라미드를 구축한 바, 우리 리그에 시사점을 준다. 하지만 제도의 경직성과 행정 리스크는 진정한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김천은 다시금 ‘유동적 전력’—강등/잔류를 오가는 구단운영의 숙명을 이어갈 전망이다. 상무 특유의 군 제도 트레블(입대-복무-전역) 루틴과 이로 인한 조직력 저하, 팬덤의 일시성과 유동성은 고질적인 문제로 남는다. 만약 시민구단 전환이 성사됐다면 홈경기 관중 충성도, 지역 스폰서십 확대 등 파생 효과는 컸을 터. 지금 이 결정이 김천 단일구단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 한국 프로축구 생태계의 ‘책임 없는 약속’—거대담론에 가려 진짜 변혁은 요원하다는 점을 복기하게 한다.

프로축구리그의 미래는 단순 경기력 경쟁을 넘어, 구단과 지역, 행정의 삼각 패스가 완벽히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전망을 얻는다. 현장의 민심과 고생하는 선수들의 명분—이것이 바로 ‘책임’이라는 전술적 단어가 K리그라는 장 안에서 제대로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는 실마리다. 김천 구단은 뼈아프게 지켜본 현실을 딛고, 언젠가 다시 시민구단체제 전환의 힘찬 빌드업을 설계해야 할 때다. ‘깊은 유감’이라는 외침이 구체적 행동과 혁신의 패스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은 단지 김천의 바람이 아니라, K리그 전체를 뜨겁게 응원하는 많은 축구팬들의 간절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 김태영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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