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백코어: 명품보다 청초한 ‘부잣집 딸 스타일’이 트렌드는 이유

요즘 패션 신(Scene)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현백코어’(현대백화점 스타일)다. 이 키워드는 그야말로 강남·압구정 ‘부잣집 딸’의 청초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패션 언어로 번역한 신조어. 럭셔리 브랜드 옷으로 휘감는 ‘플렉스’ 대신, 깔끔하고 품위있게, 하지만 결코 과하지 않은 미니멀 룩을 선호하는 트렌드다. 최근 MZ세대부터 4050 소비자까지 연령 구분 없이 모두가 이 스타일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 현대백화점 앞 또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크롤해보자. 로로피아나의 캐시미어 니트, 조곤조곤한 엘메스 켈리백, 발망·보테가·생로랑의 클래식 백이 자연스럽게 어깨에 걸려 있고, 롱코트와 플레어 스커트, 무지 티셔츠 안에서 절제된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티 안 나게 과시하는 쿨함’, 이게 바로 현백코어의 핵심이다.

이 현상은 명품 시장의 구조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글로벌 소비 시장에서 Y2K 패션, 스니커즈, 빅 로고 아이템이 잠시 대세를 탔다면, 최근엔 과시적 소비의 피로감과 럭셔리 ‘퀄리티 백래시’가 감지된다. MZ세대는 브랜드 ‘큰 로고’보다 ‘은근한 값짐’, ‘시간이 오래 가는 소재와 실루엣’에 매력을 느낀다. 게다가 고금리·고물가 시대에 아직도 럭셔리 백에 3천만 원을 지르기엔 부담이 크다. 이럴 때 플렉스 대신 조용히 원단, 재단, 핏에 집중하는 ‘공부한 패션’을 선택하는 것이다. 현백코어의 대표 아이템들을 살펴보면 롱코트 한 벌에 수십만~수백만 원은 들지만, 유행 안 타고 매년 꺼내 입을 수 있다는 점이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계단식으로 구매를 시작하고, 결국 패션 투자와 소비의 경계가 흐려지는 모양새다.

현백코어의 인기는 단순히 패션이라기보단 ‘라이프스타일’ 코드에 가깝다. 집에서 요가하고 책읽는, 브런치 먹는 삶 같은 편안함을 옷차림에도 녹인다. “이너웨어도 품격 있게”, “백을 들어도 클래식하게” 등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고의 품위’를 노리는 건데, 여기서 또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드러나는 사치보다 태생적인 여유(를 연출하는 진짜 센스)다. 브랜드를 빽빽히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누가 봐도 ‘잘 산다’는 게 느껴지는, 그 쿨내 진동의 매력! 한편, SNS에서는 #현백코어, #조용한럭셔리, #라운지룩 해시태그를 달아 누가 더 자연스럽고 미묘하게 부티를 뽐내는지가 일종의 ‘놀이’가 됐다. 미국선 ‘에스테이트 코어’(Estate Core), 일본선 ‘시로가네 셋타이’ 등 지역별 버전으로 비슷한 패턴이 관찰된다. 패션은 결국 시대의 감정을 반영한다는 거, 다시 한 번 증명되는 대목.

“현백룩=부자의 교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타일이 정형화됐다는 비판도 있다. 똑같은 풀오버에 좀 더 부드러운 색감, 모두의 클래식 백, 본질적으로 ‘비싼 미니멀리즘’이라는 점에서 다양성이 결핍됐다는 의견이 있다. 다만, 이런 현상 역시 패션 트렌드의 순환 논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뒤바뀌는 경제 상황, 20-30년 뒤엣세대들의 취향 변화가 반영된 디자인은 곧 새로운 스타일로 이어질 것. 그러니 지금의 현백코어는, 생생히 소비자 시장의 정서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업계와 소비자 모두 주목할 만한 지점은 ‘현백코어’가 단순 유행이 아닌 브랜드 정체성의 재정의 기점이 되고 있다는 점. 명품 브랜드들이 현백코어 전략에 맞춘 컬렉션·밸류라인을 기획하고, ‘조용한 고급스러움’을 표방하는 신생 브랜드가 이 흐름에 합류한다. 더 이상 한철 유행이 아니라, 일상에 스며들고 미묘하게 변형되는 흐름이다. 매장에서, SNS에서, 현실과 온라인을 넘나들며 이 현상은 계속해 확장 중이다. 럭셔리 입문, 혹은 원조 명품파 모두 ‘깊이 있는 소비’와 ‘진짜 나만의 것’을 고민할 때다. 트렌드는 돌고 돈다. 오늘의 현백코어가 내일은 어떤 방식으로 재탄생할지, 패션 씬의 변화는 멈추지 않을 테니까!

— 오라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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