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새로운 런웨이가 된 스키장: 럭셔리 패션의 지형을 재설계하다

한때 오트쿠튀르의 우아한 심장에서만 펼쳐지던 샤넬의 쇼가, 이제 전 세계의 프리미엄 스키장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최근 개최된 샤넬의 2026 F/W 컬렉션은 프랑스 쿠르셰벨의 설원 위에 세련된 무대와 찬란한 조명을 설치해, 패션계에 새로운 선언을 던졌다. 눈 덮인 피스트 한복판을 질주하는 모델들, 새하얀 풍경과 어우러지는 아이코닉한 트위드 코트, 그리고 동계 스포츠의 기능성과 샤넬만의 클래식 라인이 깃든 액세서리들이 어우러진 이 무대는, 더 이상 패션쇼의 무대로 익숙한 파리의 그랑팔레가 아니라, 모던 럭셔리와 액티브 라이프스타일의 교차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샤넬의 이 같은 행보는 단지 쇼의 장소를 옮긴 수준이 아니다. 브랜드가 전통적인 럭셔리 소비층을 넘어, ‘경험’ 자체에 가치를 두는 밀레니얼·Z세대의 심층 심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신호다. 최근 3년간,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들은 예상을 뛰어넘은 장소에서 팝업스토어, 패션쇼, 아트 콜라보를 열며 고객의 몰입 경험을 유도해 왔다. 이번 샤넬의 스키장 런웨이 역시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스노우캣(설상차)’를 타고 도착해 자연을 품은 럭셔리 서비스, 업사이클 소재의 스키웨어, 디지털 NFT 패션 소품 등 새로운 소비 가치를 제안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근 루이비통 역시 스위스 장 스키리조트에서 ‘설원 아틀리에’를 선보였고, 디올도 알프스 여행 패키지와 협업해 화제를 모았다. 이는 명품 시장의 MZ세대·글로벌 슈퍼리치 겨냥한 맞춤형 콘텐츠 전략이 대세임을 알린다.

흥미로운 점은 샤넬의 이 변신이 명품 하우스만의 실험이 아니라, 전 세계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촘촘히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 뷰로베리타스 등 해외 라이프스타일·럭셔리 시장 리포트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실외 액티비티의 가치가 새롭게 부상했다. 얼굴을 온전히 드러내고, 자연 속에서 ‘내가 주인공인 무대’를 경험하고 싶은 심리, 그리고 SNS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과시하고자 하는 트렌드는 패션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샤넬은 이를 가장 정교하고 감각적으로 캐치해내, 이제 트렌드세터라면 한 번쯤 스키장 런웨이에서 레드카펫을 걷는 듯한 경험을 상상하게 만든다. 제품군도 이에 맞춰 재설계됐다. 고기능성 방수 트위드, 안전 자수 헬멧, 알파인 무드의 퍼액세서리 등은 일회성을 넘어 동계 스포츠와 일상의 접점까지 확장된다.

이러한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의 문화적 재배치 전략은 결국 브랜드와 사용자의 연결 방식을 혁신한다. 새로운 럭셔리의 정의점은 더 이상 오직 희소한 상품의 소유가 아니다. ‘경험하는 무대’, ‘공간의 소유’, ‘행위의 차별화’가 중첩되면서,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브랜드를 내러티브로 끌어들일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샤넬이 스키장에서 런웨이를 펼치는 장면은, 단순히 패션의 범주를 넘어, 고급스러운 삶의 방식이 트렌드를 리드하고, 곧 공간마저 브랜드화해버리는 시대정신을 상징한다. 이 과정에서 샤넬은 사회·문화적으로도 ‘여성의 해방’과 ‘액티브 룩’이라는 본원의 헤리티지를 동계 스포츠에 재투영한다. 20세기 초, 가브리엘 샤넬이 여성의 옷차림에 혁명을 일으켰던 그 기운이 노르딕 설원 위에 다시 한 번 꽃을 피운 것이다.

동시에 소비자 심리는 더욱 정교해진다. 샤넬의 스키장 컬렉션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은 ‘럭셔리’라는 단어 자체에 거리낌보단, 자신만의 스토리와 ‘남다른 취향’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함께 내재됐다. 이에 따라 명품 브랜드들은 고객의 움직임이 있는 공간, 오감이 만족하는 순간, SNS에서 시각적 충격을 줄 수 있는 분야로의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구찌가 올림픽 경기장에 만든 팝업, 프라다가 해변에서 개최한 서핑 페스티벌도 같은 맥락이다. 샤넬은 자칫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던 하우스의 이미지를 깨고, 트렌드와 혁신을 리드하는 브랜드로 자신을 성공적으로 재포지셔닝했다.

지금 이 순간, 럭셔리 패션의 진화는 눈 속에 스며들었다. 샤넬의 이번 스키장 런웨이는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이 단순히 오브제가 아니라, 고객의 현실적이고 다채로운 라이프스타일에서 살아 숨쉴 수 있는 경험이 됐다는 선언이다. 눈부시게 하얀 설원 위를 걷는 모델들 사이로,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현대적 감각이 교차할 때, 우리 모두는 삶 자체가 무대가 되는 패션의 진짜 본질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샤넬이 만들어낸 이 새로운 매혹의 공간 안에서, 패션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라, 일상을 넘어서는 경계가 된다.

— 배소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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