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헬스케어 서울선언, 글로벌 보건 패러다임을 다시 묻다

보건복지부와 세계보건기구(WHO)가 2026년 10월 21일 서울에서 공동으로 ‘AI 헬스케어 서울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번 선언은 인공지능(AI) 기술의 폭발적인 진전에 따라 변화한 보건·의료 패러다임을 한국이 주도적으로 선점하겠다는 의지이자, 국제사회의 최우선 의제가 디지털 헬스케어에 있음을 공고히 한 사건으로 해석된다. 선언문은 전 세계 100여개국 보건 장관 및 대표단이 모인 가운데 채택됐다. 주요 내용은 AI 기술 도입 시 안전·윤리·형평성 확보, 개인정보 보호, 건강불평등 해소에 대한 국제적 합의 도출, 개발도상국의 기술 격차 해소 등이 뼈대다.

의학 현장에 AI가 적극 도입되며 의료의 정의와 접근성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FDA는 AI 기반 영상진단 장비, 버추얼 헬스 네비게이터 등의 신속 인증제도를 도입해 의료 혁신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EU는 AI법(AI Act) 제정 이후, 의료기기 AI에 대해 ‘높은 위험군’으로 분류해 엄격한 규제와 심사를 병행한다. 반면, 이번 서울선언문은 규제와 촉진을 모두 아우르며 글로벌 합의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차별성을 드러낸다. 실제 WHO는 “기술 발전의 수혜가 특정 국가에 집중돼선 안 된다”고 명확히 못박으며, 데이터 접근성·윤리적 개발·공정한 기술 이전의 국제 거버넌스를 촉구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가 발표 초기부터 WHO와 직접 조율에 나선 배경에는, 글로벌 AI 헬스케어 시장에서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현실이 있다. 미국, 유럽, 중국 할 것 없이 인구 고령화·만성질환 급증·보건 인력 부족에 대응책으로 AI를 선택했다. 미국의 대표 의료기관 Mayo Clinic은 AI 데이터레이크 구축, 원격진단-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으로 환자 맞춤형 진료를 제공 중이며, 중국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는 방대한 인구 기반의 의료 빅데이터와 자체 AI 모델 고도화에 사활을 걸었다. 아프리카, 동남아 등 일부 국가는 기술 격차와 인력 미비로 이미 AI 기반 헬스케어의 글로벌 소외지대로 전락할 가능성조차 제기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선언문의 윤리·책임성·접근성 원칙은 미래 질병 팬데믹,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로드맵이 될 수 있다.

관건은 선언문이 구두합의에 그치지 않고 실제 각국 정책에 적용될 수 있는 강제력과 실행력이다. 미국 FDA, 유럽 EMA, 일본 PMDA등 선진국 규제기관이 자체적 기준을 고수한다면 선언문의 국제 규범화는 난항을 겪을 수 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24년 AI 원칙을 내놓았지만, 실질적 이행 수준은 회원국별로 극명히 갈린 바 있다. 표준화 논의 과정에서 제약·의료기기 기업의 이해관계, 의료데이터 주도권, 의료보험 체계 개편 등이 당면 쟁점이다. 한국은 자체적으로 개인 의료정보 보호법 개정, 의료 AI 기업 인증체계 신설, 임상시험 가이드라인 등을 강화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기 위한 협의체 마련, 데이터 상호운용성, 공공 데이터 개방 등은 여전히 숙제다.

글로벌 AI 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26년 2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유럽은 이미 다국적 인증·상호인정 협약 확장에 주력 중이고, 중국은 ‘건강 중국 2030 플랜’을 내세워 국가주도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 한국은 IT-의료 융합 스타트업, 국책병원 임상 빅데이터 활용, 지방 의료 AI 시범사업 확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최초의 WHO-보건부 공동 선언이 갖는 상징성과 경제적 파급효과를 동시에 보여준다. 키워드는 기술혁신의 속도와 윤리적 통제의 균형, 글로벌 정책 조율, ‘기술의 보편적 이익’ 등이다. 지금은 각국이 공통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 표준화 경쟁이 아니라, 의료·복지 수준의 국제적 격차 해소와 인류 복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 실현될 순간임을 시사한다.

국내 의료현장의 AI 도입 확대에는 특정 대형병원 쏠림, 의료보험·수가 문제, AI 신뢰성·책임소재 등 제도적 취약점 역시 상존한다. 이번 서울선언문은 각종 정책·제도 개선의 촉진제인 동시에, 국가·기업·시민사회가 AI 윤리 논의와 실질 이행에서 결코 소극적일 수 없음을 환기한다. 궁극적으로 선언문의 실효성은 얼마나 각국 의료 시스템에 녹아들고, 혁신이 모든 환자에게 평등하게 전이되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북미·유럽 주도의 룰메이커를 넘어서 아시아의 정책적 리더십을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 글로벌 집단지성의 전환점에서 AI 헬스케어 패러다임이 현실로 정착할 수 있을지, 다양한 정책 실험과 국제 공조가 절실히 요구된다.

— 이한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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