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물러남’의 힘: ‘열 번의 물러남’ 기도학교가 던지는 울림

기도라는 행위가 일상의 한복판에 들어오려면, 단순한 신앙 행위를 넘어 삶 전체를 깊이 파고드는 질문이어야 한다. 신간 『열 번의 물러남』 기도학교는 바로 그런 자리에서 자신의 고요한 목소리를 낸다. 이 책은 기존의 기도 서적이나 영성서가 해온 ‘열심’만 강조하는 틀에서 물러선다. 오히려 반복된 일상 속에서 힘겹게 마주하는 내면의 자화상, 스스로 후퇴하는 그 자리에 서서 묻는다. 한 번의 전진보다 열 번의 물러섬이 삶과 신앙에 어떠한 울림을 주는지, 진지한 고민 끝에 만끽하는 깨달음처럼 다가온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실천적 언어 대신 묵묵한 관찰자를 자처한다. 신앙적 명징함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우리 사회 곳곳의 불안, 개인의 상처, 집단적 피로감에 천착한다. ‘물러남’은 피하는 행위가 아니라, 끝내 삶에 스며드는 성찰의 반복임을 드러낸다. 인생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실망과 좌절, 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이 책이 짚어내는 현실감은, 한국 사회 특유의 빠름과 경쟁의 미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물러남을 ‘퇴보’가 아닌 자기성찰의 계기로 바라본 저자의 시각은, 최근 한국 출판계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깊이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저자가 실제로 경험하고, 응시한 수많은 실패와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기존 기도나 명상 책이 흔히 빠지는 교조주의적 태도, 신비롭고 낭만적인 묘사를 경계한다. 대신 저자는 자신의 삶, 그리고 현대인들이 겪는 비슷한 상처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그 ‘물러남’의 순간순간들이 어떻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었는지 조심스럽게 서술한다. 어떤 이는 이 책을 ‘현대적 영성의 실천서’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물러남의 미학을 이렇게 요란한 광고 없이 풀어내는 저자의 드라이하면서도 담담한 언어는, 문학적 자의식을 최소화하면서 오히려 더 큰 여운을 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기도학교’라는 말이 주는 이중적 레이어다. 기도는 배울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오로지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가? 책은 그 둘 사이의 간극에 질문을 던진다. 형태 없는 영적 실천, 대화의 틀로서의 기도로서의 경험, 그리고 연습과 반복의 힘. 삶의 현장에서 끈질기게 ‘물러나는 연습’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저자가 직접 ‘학교’라 명명한 그 공간은 폐쇄적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일상 속 질문의 확장판에 가깝다. 직접적인 위로나 장황한 해설 대신, 작은 사례와 일화를 통해 천천히 메시지를 내놓는다. 이 섬세함은, 독자 각자가 자신만의 ‘물러남’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배려심으로도 읽힌다.

동시대의 기도문학 또는 명상서들과 달리, 이 책은 특별한 언어적 기교를 내세우지 않는다. 서사의 구조 역시 간결하다. 그럼에도 페이지를 덮는 순간 문득 멈칫하게 되는 공백이 남는다. 물러남의 자리에서 바라본 세상, 자기 자신과 타인의 아픔을 번갈아 마주보는 식의 자기인식. 이런 사유의 깊이는 한국 사회에서 ‘전진’만을 미덕으로 삼아온 교육과 문화적 코드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책을 읽다보면 조용한 사색과 침묵이 독자를 지배한다. 복잡한 해석 없이도, 반복의 미학이 존재하는 그 풍경을 독자 스스로 체득하게 된다.

수년째 이어지는 사회적 우울과 팬데믹, 집단적 번아웃을 겪고 있는 2026년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특별한 울림을 주는 것은 이유가 있다. 오랜 시간 액셀러레이터 위에 발을 올려왔던 한국인들에게, 때로는 ‘잠시 멈춤’이나 후퇴라는 선택이야말로 스스로를 다시 응시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임을 일깨운다. 저자는 절박한 혁명이나 갑작스러운 익명의 해방이 아닌, 소박한 ‘잠시 멈춤’이 우리 내면을 구해내는 가장 실질적이고도 치유적인 힘이라 말한다. 독자로 하여금 자책이나 조바심에서 벗어나, 비로소 각자 자기 자리의 ‘물러남’을 배우도록 이끈다.

『열 번의 물러남』 기도학교의 등장은 한국 사회 영성서 시장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만든다. 무수한 자기계발서와 ‘힘내라’만을 남발하는 기성 문화를 비껴가며, 조용한 위로와 깊은 자기성찰이라는 두 축을 절묘하게 엮어낸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물러남’의 의미, 그리고 그만큼의 성숙을 담아 이 책은 오랫동안 현대인의 곁에 머무를 작품이 됐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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