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강원2.0] 11월의 평창과 고성, 계절이 품는 여행의 결
11월의 강원, 그 자연은 쌀쌀해진 공기 속에서도 낮은 햇살에 반짝인다. 깊이 스며드는 바람에 숨겨진 이야기와 그윽한 산빛이 길을 따라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번 달, 평창군과 고성군이 추천 여행지로 선정된 이유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온기로 채워진 시간과 계절의 결이 얹혀 있기 때문이다. 평창의 산사는 고요하게 붉어진 단풍 아래 몸을 낮추고, 고성의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청명하지만 낯선 설렘이 돋아난다. 마을을 걷다 보면 주민들이 과일을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잠시 멈춘 시골버스 정류장에서는 11월의 햇살이 감자로 익어간다. 여행지에 들어설 때마다 지방 특유의 구수한 음식 내음이 코끝을 맴돈다. 입김보다 먼저 다가오는 곁의 따뜻함, 그 섬세한 변화와 정취가 평창과 고성에 있다.
평창군에서는 대관령과 월정사, 봉평과 진부 역이 이십분 단위로 나열된 듯 이어진다. 해발 높은 곳에 서리 내린 새벽에는 방울방울 맺힌 이슬이 고요하게 빛난다. 월정사를 찾으면, 전나무 숲을 따라 걷는 순간마다 붉은 잎이 손 위에 내려앉는다. 새로 문을 연 작지만 인상적인 북카페와 소금기 어린 손칼국수집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쉬게 한다. 드문드문 들리는 동네 방송, 뒷산에 오래 씌여진 나무 간판들이 작은 설렘을 더한다. 봉평 메밀밭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메밀전병과 동동주로 가을의 끝을 알리고 있다. 따뜻하게 담백한 맛, 그리고 멋스런 한옥 펜션들은 현대적인 편안함과 고즈넉한 옛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오늘처럼 추워진 날에는 군고구마와 곶감, 설악산에서 내려온 밤공기가 잔잔히 어울린다.
고성군은 바다와 바람, 그리고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해수욕장을 따라 펼쳐진 백사장이 비수기에 더 넓고 조용하게 열려 있다. 속초와 가까우면서도 북적임이 덜한 해안도로는 느리게 운전하기 좋은 명품이다. 아침에 등대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평온한 수평선이 펼쳐지고, 작은 어촌마을에서는 새벽 어시장의 분주한 손길과 함께 온다. 고성의 바다는 이 계절, 유달리 맑다. 바닷가 펜션 창문으로 고즈넉이 흘러드는 석양 아래서는 찐 계절음식을 맛볼 수 있다. 곰치국, 오징어순대, 명란젓구이와 같은 바다의 온기가 그 자리에서 몸을 데운다. 저녁놀이 산 위로 부드럽게 젖어든 뒤, 작은 마을길 카페에서 들리는 맥주잔 소리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불러일으킨다. 이곳의 아늑함은 자연이 내미는 손길이자, 여행자의 온기가 남는 자리다.
11월은 강원의 깊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기다. 바람은 조금 세차고, 산은 이제 겨울을 준비하지만, 그 틈으로 채워진 소소한 감성이 있다. 호텔과 펜션, 농가 민박에서는 알음알음 추천하는 마을길 산책이나, 산림욕 명소를 연결해 준다. 평범한 하루가 풍경이 되는 짧은 산책, 갓 구워낸 빵 냄새가 퍼지는 농촌 마켓도 이 계절엔 소소하게 기억에 남는다. 평창과 고성은 명소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여백’이 넉넉하고 ‘쉼’이 고즈넉한 곳이다. 연인과, 가족과, 혹은 혼자서도 어울릴 수밖에 없는, 따스한 시간들이 여행을 채워준다. 여름의 무게가 가고, 겨울의 고요함을 기다리는 이 계절, 두 여행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풍경’을 보는 재미가 아니다. 돌아오는 길엔 어깨에 차분히 얹힌 계절의 기억, 그 세밀한 맛과 향이 오래도록 마음을 감싼다.
다음의 계절이 섞여들기 직전, 평창군과 고성군은 차분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여행자에게 들려준 채, 또 한 번의 11월을 넘긴다. 그 품 안에서 느끼는 소박한 감동, 그리고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이 더없이 진하다. 누구나 마음속 한구석에 이 계절의 조각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