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호황에 기댄 지역경제, 환율 리스크에 휘청

올해 하반기 경기 남부와 경북 등 주요 수출 거점 지역의 기업들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자동차, 반도체, 기계 등 핵심 수출산업이 해외 수요 호조와 글로벌 공급망 회복에 힘입어 실적 퀀텀 점프를 노려왔으나, 원화 강세로 인한 환차손과 예상외로 빠르게 하락하는 달러/원 환율이 기업들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달러당 1,430원 부근에서 1,220원대까지 내려앉은 환율 흐름은 지역 수출기업,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영업이익 구조를 급격히 압박하고 있다. 주요 조력자였던 환차익이 한순간에 리스크로 되돌아간 셈이다.

현장 취재 결과, 포항·울산·창원 등 중공업 벨트 업체들은 이미 2분기 들어 계약단가와 실제 수령액 간 격차가 두드러지면서 추가 인건비와 원가 압박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자금 여력이 크지 않은 중소기업일수록 환변동 보험 등 선제적 대응 여력이 부족했고, 신속한 헤징 전략의 부재는 매출 성장에도 불구하고 최종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 지역경제의 ‘버팀목’ 기능을 해왔던 이들 기업의 재무 건전성 악화는 고용시장 위축과도 연결돼, 지자체 차원의 실질적 대책 필요성이 부각된다.

환율 급변의 원인은 미국의 금리 동결, 중국 경기 회복 기대감, 미·중 공급망 재편 등 복합적이나, 국내 통화당국과 산업부의 정책 대응은 주로 거시지표상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출주도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겠다던 정부의 약속과 달리, 정작 지역 기반 산업 현장에서는 “환변동 위험 방치, 책상 위 숫자놀음”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온다. 현 정권은 무역수지 흑자와 GDP 성장 등 전체 경제 프레임을 △저성장 탈피 △수출 드라이브로 포장하지만, 전체 수출액 중 중소·중견기업 비중이 약화되는 역설적 현상이 뚜렷하다.

단기 현상인가, 구조적 위험인가.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수출의존도 함정’과 지역 간 불균형 심화를 동시에 지적한다. 대기업 중심 집중도가 높은 자동차·반도체·조선업은 대외충격 방어력이 크지만, 부품·1차 생산 공급망을 떠받치는 지역기업은 환율 리스크가 곧 현금흐름 악화로 직결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최근 조사에서는 35% 기업이 “지속적인 환율 불확실성에 따라 일감 수주에 보수적으로 전환할 것”이라 답했고, 신용도 하락·운전자금 악화 우려도 빠르게 번진다.

비단 경기·경북뿐 아니다. 광주, 전북, 충청 일부 산업단지도 상승세이던 수출 체감이 이른 둔화로 돌아선 상황이다. 업계 현장 목소리는 단순 구조조정 차원이 아니라, 환위험 관리체계 부재에서 비롯된 장기적 ‘지방경제 쇠퇴 도미노’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띤다. 세계적으로 환율 변동이 격심한 시기임을 감안해도 정책적 안전망은 현격히 부족하다.

통상·환율정책은 중앙정치의 변수와 직결된다. 현 집권세력은 강달러·약원 구도에서 얻은 수출효과를 적극 홍보해왔으나, 반대 급부로 작용하는 환율 역풍, 지역경제 취약성은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노동시장 유연화·고용안정 보완책도 언급만 무성할 뿐, 환변동보험 실질지원·금융 유동성 지원 등 현장 실효성 담보 정책은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 21대 국회 하반기 국감에서 관련 쟁점이 일부 오르내렸으나, 여야 모두 단기 포퓰리즘 프레임에 갇혀 실질 지원입법 마련에는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지역균형발전과 수출 주도 성장, 두 가치가 충돌하는 현장이 바로 현 환율위기다. 근본적으로 환위험관리 컨설팅·공공기관 주도 공동 헤지펀드 조성·피해기업 유동성 공급 등 복합 처방이 시급하다. 정부의 통계상 성과주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지역 경제 생태계의 파열음’을 방치하다가 전국적 고용쇼크로 번지는 악순환은 단호히 차단해야 한다.

지역기반 수출기업의 환위험 체계적 대응, 중앙정치권의 책무와 국가경제의 장기 체질개선이 ‘현장 우선’ 방식으로 재편돼야 한다. 환율은 단기 지표가 아니다. 지역경제, 기업, 일자리, 결국 국민의 삶 전체가 연결된 ‘정치적 변수’임을 여야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 윤태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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