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현실을 비추는 그림자: ‘죽이고 싶은 아이’가 기록한 성장통
2026년 가을, 책 시장에 한 대작이 질문을 던진다. 50만 부라는 기염을 토하며 베스트셀러 목록을 뒤흔든 ‘죽이고 싶은 아이’는 제목만큼이나 독자들에게 불편함과 진실의 무게를 동시에 안긴다. 이 소설이 청소년 성장소설로서 지닌 특별함은, 지금의 청소년 세대가 겪는 현실감 있는 상처와 불친절한 세계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직시한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친절하거나 희망적인 선택지를 배제한다. 도리어, 누구나 쉽게 외면하고 싶은 청소년의 섬세한 감정성, 잔혹한 경쟁구도, 사회적 소외와 심리적 고통, 그리고 때로는 남모르는 분노와 어둠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작품이 던지는 핵심적인 화두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이 직면한 현실의 ‘무정함’에 있다. 최근 다른 매체와 연구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이, 청소년기 학생들은 이전 어느 세대보다 불확실함과 불안, 그리고 따돌림과 고독, 불공정한 평가에 시달리며 성장이 곧 상처인 시기를 살아간다. 그러나 ‘죽이고 싶은 아이’가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사회적 배경에 대해 정면승부를 걸면서도, 끝까지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작가적 태도다.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누군가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임을 반복적으로 드러내며, 성장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포괄할 수 없는 개인의 다양한 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을 둘러싼 논란 역시 제한적이었다. ‘너무 어둡다’, ‘청소년에게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가’라는 우려와 동시에, 오히려 기존의 희망 일변도 성장담에서는 소외된, 무관심과 냉혹함에 내몰린 아이들의 실제 목소리가 들린다는 평가 역시 많았다. 독자 후기는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어떤 이는 ‘현실을 너무 극명하게 보여줘서 불편하다’고 비판하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실제 내 주변 아이들의 감정과 너무 닮았다’며 깊은 공감을 표했다. 학부모, 교육자, 상담 현장의 실무자들이 이 도서를 토론 주제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파장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경쟁적이고 배타적인 교육 환경, 가족의 해체 혹은 무관심, 온라인 공간에서의 폭력과 허위 정보 난무 등 다양한 복합적 배경이 작품 내내 현실적으로 제시된다. 밀레니얼 이후의 Z세대, 알파세대 청소년들은 친구·연애·미래 불안·학업 경쟁 이상의 압박을 느끼고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압박과 혼돈, 자기혐오·좌절·이해받지 못함의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처럼 어둡고 날카로운 불편함이 책의 흡인력을 만들어낸다. “죽이고 싶은 아이”의 인물들은 허구 같지 않을 만큼 실제의 인물에 가깝다. 그들의 고백, 좌절, 돌연한 분노, 그리고 때때로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아무도 중심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던 감정이다.
또한 이 작품은 부모세대와 기성세대, 사회 기구(학교, 상담소, 지역 센터) 등 구조의 무기력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어른들은 해결사이기보다 문제의 일부다. 청소년들을 위한 제도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그저 형식적인 수단에 머물고 있음을 소설은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최근 사회학, 심리학계 학술논문들에서 지적하는 핵심 논점과도 일치한다. 나아가 야만적 경쟁 환경에서 파생되는 폭력의 양상이, 기존의 권력이나 집단 중심 문제만이 아닌 ‘정신적 조도’의 문제임을 부각시킨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가 소설의 등장인물에서 자신 혹은 자신의 가족, 친구들의 그림자를 찾는다.
베스트셀러 기록은 단지 판매량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내 공통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이 작품에 독자들이 격렬히 반응하는 것은 단순한 공감, 혹은 자극을 넘어서, 이제야 누군가가 ‘말해주었다’는 카타르시스와도 관련 있다. 현실이라는 거울에서 나오는 거친 감정들이 비로소 공식적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작가의 문체 선택 역시 지나친 감정 소비를 경계하며, 암시와 침묵, 여백의 미학을 적절히 이용한다.
그러나 아직 이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대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범주에 대한 재정의, 어두움과 절망을 직면하는 문학의 역할, 그리고 사회 제도로서 청소년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책임은 오롯이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죽이고 싶은 아이’의 성공은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팽팽한 불안을 안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큰 목소리로 말없이 항의하던 아이들의 이야기. 이 낯설고 불친절한, 그러나 눈을 돌릴 수 없는 소설 한 권이 던지는 질문에 우리는 더 많은 고민과 응답이 필요하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