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작고 독특한 맛, 세계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다

봄의 바람이 제주를 감싸 안는 이때, 섬의 남쪽 끝자락에서 전해진 소식은 낯선 듯 가까웠다. 병귤, 양애, 반치, 그리고 제주마. 그 이름만으로도 머릿속은 이국적이고도 정겹다. 이 식재료들이 세계식문화유산 ‘맛의 방주’(Presidium Ark of Taste)에 등재됐다는 소식은 마치 오래전 바닷바람에 실린 이야기처럼, 천천히 그리고 깊게 다가왔다.

먼저 병귤. 흙냄새가 여운처럼 감도는 제주 오름 아래, 병귤나무의 작은 둥근 열매들은 평소 우리의 밥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재료가 아니다. 감귤이 기름지고 넉넉하게 익어갈 때, 병귤은 달고 쓰며, 조금은 투박하게 자라난다. 병귤의 톡 쏘는 산미와 묵직한 씁쓸함에는 날것의 땅내음과 제주의 바람이 스며있다. 제주 토박이들은 병귤 차를 끓여 독특한 향과 맛을 즐긴다. 매끈하고 귀여운 생김새와 달리, 한입 깨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강렬한 풍미는 오랜 기억 속 자연의 흔적을 닮았다.

양애는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콩의 품종명이다. 흔히 ‘애기콩’이라 불리는 이 콩은 알이 매우 작고, 삶으면 더욱 쫄깃하게 변한다. 도시락 반찬으로, 혹은 따끈한 밥 위에 올려져 나왔을 그 맛. 양애는 투박한 듯 다정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소박한 순수함이 입속에서 퍼진다. 어릴 적 어머니가 담가주던 양애청국장의 구수함, 덜 익은 시골의 맛을 꺼내보이는 듯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어색한 감촉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반치는 더욱 특별하다. 제주 방언으로 ‘반탕’이라고도 하는데,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해조류다. 바닷물과 바람, 그리고 뭍에서 오는 흙냄새가 공존하는 제주만의 바다에서만 잘 자란다. 반치는 씹으면 부드럽지만, 잊을 수 없는 향을 남긴다. 제주의 각 마을해녀들은 반치를 손수 채취해 집집마다 국거리, 무침거리로 쏠쏠하게 사용했다. 지금은 그 진한 맛을 기억하는 이가 하나둘 줄었지만, 여전히 바닷가 어귀를 걷노라면 선연하게 느껴지는 아스라한 냄새. 반치 한입에 꾹 눌러 담긴 제주의 시간과 노동, 그 느릿한 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제주마다. 흙빛을 띤 갈색 껍질, 안쪽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식감이 공존한다. 제주마는 흔히 알려진 산마, 단마와는 다른 계통이다. 해풍과 독특한 토질, 그리고 적당한 습도에서 자라난 제주마는 쫄깃함 뒤에 숨겨진 은근한 단맛과 흙내음이 뚜렷하다. 예부터 제주 토박이들은 소화에 좋다 하여 죽, 찜, 면요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해왔다. 요즘은 건강식으로 각광받으며 도시의 식탁에도 오르는 중이다. 제주마의 쫄깃한 질감은 씹을수록 마음의 허기도 달랜다. 자연의 손길이 그대로 어루만져진 듯한 위안과도 닮았다.

‘맛의 방주’ 등재는 이 식재료들이 단순히 먹는 재료를 넘어 제주와 그 삶의 방식을 기억하는 소중한 자산임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재배방식, 앙상한 땅에 뿌리 내린 투박한 생명력, 그리고 이를 일구고 조리해온 사람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기록된다. 맛이란 단순히 혀끝의 짧은 기억이 아니다. 섬 주민들의 노동, 기다림, 자연과의 타협, 그리고 소박한 생활양식까지 고스란히 담아내는 ‘문화’의 기준이 된다. 이번 등재는 사라질 뻔한 제주의 소소한 식재료들이 세계 무대에서 재조명받는 계기가 된다.

다시 떠오르는 장면 하나. 제주도 작은 마을의 어느 부엌, 노란 전등 아래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그 공간. 숟가락과 그릇 사이로 흐르던 문화, 세월, 이야기들. 병귤 한 조각, 양애콩 한 주먹, 반치로 지은 국 한 사발, 그리고 말린 제주마채가 올려진 밥상. 이 식재료들은 이제 섬의 기억 너머, 세계의 기억 속으로 또렷이 각인된다. 제주를 둘러싼 모든 고유 식재료와 생활문화를 여백 없이 담아낸 이번 등재 소식은, 우리의 식탁이 단순한 ‘먹는 일’이 아니라 지속해서 전해져야 할 ‘이야기’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낯설지만 다정한 제주 맛의 작은 조각들이, 오늘도 누군가의 일상에 소소한 위로로 닿기를 바란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제주의 작고 독특한 맛, 세계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다”에 대한 5개의 생각

  • 이런 거 연구해서 뭐하나 했더니 유산 등재라니ㅋㅋ 경제적으로 뭐 대박나는 거냐, 그냥 관광객용 마케팅 아닌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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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귤, 반치… 듣도보도 못한거네. 제주 가면 진짜 이런 거 파는 집 있음? 그냥 힙스터 감성이지 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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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뉴스 보면 제주, 진짜 특별한 곳임을 느낌. 관광산업에도 도움 많이 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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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귤 맛이 궁금하긴 한데, 그냥 시고 쓴 감귤 아냐?!! 제주가 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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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을 읽다 보니 제주이라는 공간이 가진 느림의 미학,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자연의 소박한 힘이 고스란히 다가옵니다… 잊혀져 가던 식재료들이 이렇게 세계무대에서 조명받는 걸 보니, 단순한 먹거리 한계를 넘어 살아 있는 이야기로 남길 바라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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