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에 빛바랜 책의 자리…서울국제도서전이 남긴 풍경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의 가장 뜨거운 장면은 여전히 책장 너머에 있었다. 관람객들이 부스 한편에 길게 늘어선 줄, 그 손끝이 향하는 곳엔 책이 아닌 굿즈가 있었다. 책의 도시, 서점의 숲에서 책은 점차 조용해지고, 한정판 노트와 특별제작 엽서, 작가 시그니처 텀블러가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도서전이 문화 축제를 자처한 지 오래지만, 올해처럼 굿즈가 ‘주인공’을 밀어낸 장면은 산업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서출판사들이 각종 한정판 굿즈로 발길을 모으는 이면엔, 책의 존재감이 ‘필연적으로’ 침식되고 있음을 애써 감추지 못한다. 한쪽에선 이 방식을 도서 소비의 ‘문턱 낮추기’라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책보다 수집욕에 불을 당긴 경향이 컸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매년 도서전의 붐은 바뀌지만, 올해 관람객의 시선은 책에서 점점 더 많이 이탈했다. ‘작가와의 대화’보다 ‘한정판 증정품’ 소식이 빠르게 SNS를 타고 퍼졌다. 새로운 세계문학전을 꿈꾸던 출판사들마저 부스 앞에 아기자기한 굿즈 진열대를 마련했다. 최근 출간 트렌드를 보면, 책 자체의 완성도를 뛰어넘는 마케팅이 서점가를 장악하고 있다. 단순히 ‘책을 팔지 못해 굿즈를 쓴다’는 한탄을 넘어, 참여형 축제의 테두리 안에서 ‘책 자체의 힘’이 점차 약화되는 기묘한 이중구조가 도서전의 한복판에서 자리잡는다.
이 흐름의 근저에는 출판사와 독자의 모두가 겪는 난감함이 드러난다. 도서시장의 글로벌 침체, ‘릴스’와 ‘쇼츠’로 압축되는 세대별 콘텐츠 기호의 변화, 누적되는 독서 인구의 감소는 새로운 돌파구를 갈망하게 만든다. 국내외 도서전이 점차 ‘크리에이터 페스티벌’이나 ‘팝업 굿즈 시장’의 성격을 띠는 현상은 이미 다양한 기획 전시와 작가 콜라보, 팬미팅 등으로 굳어지고 있다. 다른 이야기로, 도서전은 독자를 유인하는 ‘목적지’가 아닌, 문화를 소비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문제는 정작 책이 그 장에서 중심 무대를 내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책 자체가 주변으로 밀려나는 풍경은 업계 내외 한숨 섞인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출판인들은 ‘내부적으로도 갈등이 치열하다’고 토로한다. “이렇게라도 사람들의 발길을 끌지 않으면 도서전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며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결국 읽힐 책이 아니라 팔릴 굿즈만 남는 것,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물음엔 명확히 대답하지 못한다. 출판산업의 현실은 복잡하다. 고정 독자층의 감소, 도서정가제 논란, 전자책과 오디오북 시장 성장, 그리고 ‘책은 사지만 읽지 않는다’는 이른바 ‘귀만족 소비’의 유행. 이런와중에 도서전이라는 현장은 이제 콘텐츠 축제를 넘어 ‘소비의 장식장’이 되었다.
OTT와 영화계는 이미 오래전 ‘한정판’ 전략을 도입했다. DVD 아트북, 감독 사인 포스터, 배우 협업 굿즈가 팬덤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파도는 출판계에도 빠르게 번졌다. 문제는 영화, 드라마의 경우 ‘콘텐츠 자체의 스토리텔링’이 언제나 중심에 있었던 반면, 도서전 현장은 그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가와 독자의 ‘깊은 만남’은 점점 랜선 뒷편으로 밀리고, ‘소장가치’가 있는 물건을 원한다는 욕구에 산업 전체가 끌려가는 양상이다. 여기서 과연 책의 본질, 즉 ‘의미의 공유’와 ‘정신의 울림’이 얼마나 남았는지 자문한다.
물론, 도서전에서 굿즈를 통해 처음으로 책을 마주하는 세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포장지’로서의 굿즈가 누군가에게는 책이라는 문으로 이끄는 사다리가 되는 현실, 출판계는 이런 이중성을 외면하기 어렵다. ‘책을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책과 함께 온 굿즈 때문’이라는 자기 고백도, 문구 업체와의 협업이 ‘책 시장’의 외곽을 부풀려준다는 아이러니도 이 시대 도서전 풍경의 단면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올해도 그 현장감과 동시에 누락된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긴다. 대중의 취향과 시장의 요구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책 만들기와 팔기의 균형, 의미와 소비의 대립, ‘책’이라는 매체의 본령을 어디까지 지키고 어디까지 타협해야 할지 문화 현장은 계속해서 시험대에 오른다. 혹자는 ‘책이든 굿즈든, 사람을 모으는 것이 1순위’라지만, 그럼에도 책의 자리, 그리고 그 자리를 사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 번 더 되짚어 보는 것이 문화부 소속 기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책장에 남은 한정판 노트와 엽서에서, 우리는 ‘읽다’의 의미를 묻는다. 도서전의 오늘이 ‘축제’로 기록되는 한편, 책이 없는 축제가 과연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질문은 더욱 깊어진다. — 한도훈 ([email protected])


이게 진짜 도서전 풍경 맞음?😒 의미 상실…
책 안 사고 굿즈에 줄서다니 할 말 없다ㅋㅋㅋ 이번 도서전은 그냥 문구 페어 아님?
책 없는 도서전이라니… 진짜 웃기네. 이러다 문구 페스티벌로 이름 바꾸겠어ㅎ
진짜 책보단 굿즈 인기라는 말, 들을 때마다 씁쓸하긴 하네요. 책의 가치는 어디로 간 건지…😕
책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말, 요즘엔 옛말인 것 같군요. 한정판에 끌리는 심정도 공감은 갑니다만…음.
과연 굿즈가 독서 인구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장기적으로 도서전이 책 중심의 문화행사로서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