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체 분석으로 결핵 전파 경로 추적, 방역의 새 국면
질병관리청이 결핵균의 유전체 전체 분석을 통해 국내 결핵 전파 경로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주로 역학조사와 전통적인 감염경로 추정에 집중한 데 반해, 이번 조치는 실제 환자에서 분리된 결핵균의 유전정보 전부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감염 고리와 확산 경로를 정밀하게 추적하려는 시도다. 현장에서는 지난해부터 소규모 집단감염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왔으며, 환자 간의 연관성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보고되어 역학적 한계를 드러냈다. 질병청 관계자는 최신 전장유전체분석(WGS, Whole Genome Sequencing) 기술 도입으로 환자 간 감염 클러스터를 구체적으로 식별하고 기존 방식보다 더 예리하게 전파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핵은 아직도 국내 전파 감염 질환 중 발생률이 높은 편이다. 2025년 기준 한 해 신고 건수는 약 2만 2000여 건, 사망자도 1000여 명에 달했다. 주로 기침,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며, 밀폐 공간 등에서 집단 감염 위험이 상존한다. 가령 2026년 상반기 서울 시내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단기간 내 2차 감염자가 30여 명 발생해, 지역사회 내 전파 경로 규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연락이 닿지 않는 무증상 보균자나, 타 지역 전파 가능성 등으로 기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컸다.
전장유전체분석은 결핵균의 DNA 전체염기서열을 비교해 개별 환자 간의 전파고리, 신·변이종 출현 여부, 국내 외 유입여부 등도 예측이 가능하다. 올해부터 질병청 결핵분석센터는 일선 의료기관 및 방역 현장에서 확보한 결핵균 시료 수십 건을 신속 분석, 일부 집단별 감염 사슬을 분리 확인 중이다. 실제 4월 발생한 부산 학원가 집단감염 건에서 이 기술을 활용, 확산 기점 환자와 2, 3차 감염자들 간 정밀한 ‘전파 지도’를 도출해 방역당국이 빠르게 고위험군 선별 및 이동경로 차단까지 이뤄낸 사례가 보고됐다. 이 같은 분석은 기존 역학조사의 한계로 지목되던 ‘잠복기 추정’ 또는 ‘무증상 감염자 추적’ 등 문제에 속도와 정확성 모두를 높인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유전체 분석이 결핵뿐 아니라 메르스·코로나19·에볼라 등 감염병 방역에서 이미 세계 각지서 활용된 바 있음에 주목한다. 국제적으로 영국·독일 등이 결핵균 유전체 분석을 도입한 이후 병원 내 집단발생 관리에서 효과를 입증했다. 한국은 아직 본격적인 전국 단위 결핵균 유전체 데이터베이스 구축 단계로, 과도기적 시간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특히 샘플 물량·분석 인력·정보공유 시스템 등 현업 기반 확보가 병행되어야 실질적 성과가 난다는 게 보건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유전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지만, 질병청은 환자 비식별화·익명화 조치와 엄격한 데이터 관리로 임상연구 및 방역 목적 외 활용은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현장 의료진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역학적 고리를 눈에 보이게 추적할 길이 열리는 만큼, 학교·시설 등 집단 감염 차단에 실질적 도움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반면 일부 현장 보건소 관계자는 “유전체 데이터가 늘어나면 분석 속도와 정책전환의 타이밍 차이, 현장 방역 인력의 과로 등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며 지속적인 인력 확보와 연계 정책 보완을 주문했다. 결핵은 장기간 잠복기와 비특이적 증상 등으로 방역에 항상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사회 취약 계층 등에서 복합 전파 양상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음에 따라, 과학적 분석과 인간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도 있다.
결핵 유전체 분석사업이 전국으로 확장되려면 실제 환자 및 가족의 신속 검사 접근성, 분석 결과의 현장 반영, 방역기관 간 정보공유가 중요하다. 질병청은 오는 연말까지 주요 광역자치단체 및 거점병원과의 분석망을 시범적으로 운영한 뒤, 내년 상반기부터 전국 보건소로 확대 계획을 밝힌 상태다. 분석 기술과 현장 역학, 환자 지원체계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만 유전체 정보가 실제 감염 차단, 피해 최소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방역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현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