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환자 생명선, 국산 의료기기가 만든 변화의 시작점

늦은 밤,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마주친 허윤정(가명) 씨의 가족은 의료진의 손놀림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급성 심정지로 실려온 남편을 살려낸 건 의료진의 의지뿐 아니라, 현장에 신속히 작동 가능한 심장제세동기와 흉부압박기 같은 필수 의료기기의 존재였다. 우리는 이런 장치를 늘 곁에 두고 사는 듯하지만, 막상 본질을 들여다보면 의료현장의 ‘생명선’을 쥐고 있던 핵심 기술 상당수가 여전히 외국에 기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기사 『중증·응급환자 생명 지키는 필수의료기기…국산화 방향 모색』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최근 응급·중증환자 치료에 필수적인 의료장비가 국내에서 제대로 생산되지 못해, 여러 응급센터나 지방 중소병원들이 악전고투하고 있다. 현장 의료진은 수입 의료기기의 가격, 애프터서비스, 긴급공급의 한계를 토로한다. 정부는 필수의료기기 국산화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식약처, 보건복지부 등 주요 부처가 신기술 R&D 예산을 늘려 관련 기업 지원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 배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일부 생명유지장치의 해외 수급이 멈춰버렸던, 당시의 마른침 삼켰던 기억도 있다.

이제 의료기기 국산화가 한 축의 산업정책이나 수출기업 육성 차원이 아니라, 국민 생명과 병원 현장의 절박한 ‘일상’으로 환원되고 있다. 경기 김포의 한 소규모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손지현 간호사의 증언은 생생하다. “필수기기 부품이 갑자기 고장났는데, 국내 업체가 아니니 부품 수급에만 보름 넘게 병상이 멈췄죠. 환자들이 눈앞에서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의료진도 같이 지쳤어요.” 경험자의 말에는 현장 의료의 피로와, 국산화의 절실함이 배어있다.

한편 국내 의료기기산업계는 만만찮은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의료기기 개발은 만성적인 연구비 부족, 까다로운 임상시험, 병원 인증의 벽, ODA 중심의 판로 제한 등 크고작은 장애물을 만난다. 환자 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기반 진단기기도 막상 연구기업이 국내 임상에 들어가면, 정보윤리·법률구조의 한계에 부딪히기 일쑤다. 인구 고령화 속도는 빨라지는데,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사회 전체가 ‘생명 보장’에 다시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사람, 그중에서도 실제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최전선의 의료진. 국산 의료기기를 둘러싼 과제는 결국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출구가 보인다. 현장에서는 “틀”만 바꿔치운 미세한 기능 변화가 아니라, 다양한 돌발상황에서도 견고하게 작동하는 실용적 기기로 평가받아야 한다. 병원 관계자와 의사, 나아가 간호인력들의 체험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필수다.

동시에, 국민 역시 의료기기의 국산화가 단순히 ‘국내’ 브랜드 달기 이상의 의미임을 알아야 한다. 해외 사정, 정치적 변수, 글로벌 공급망의 흔들림 속에서 국산화는 우리의 생명권, 의료주권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건강 취약계층이 많은 지방의 응급센터, 벽지의 보건소 등 현장에서 모두가 동등하게 안전한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으려면, 반드시 우리 손에서 ‘해결사’가 등장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곳곳에서 작지만 확실한 변화는 시작됐다. 중소기업 주도 공동개발, 산학협력, 그리고 병원-현장협력 중심의 신제품 테스트까지. 그러나 국산화의 종착지는 기술과 이윤의 영역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희망의 연결선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수지타산’이나 ‘수입대체’란 단어로 잴 수 없다. 결국 ‘현장’에 답이 있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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