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예술적 영역 확장, 중국 드라마의 새로운 황금시간
가을 저녁,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거실에서 중국의 TV 황금시간대 채널을 틀면,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청명한 화면 속 포스터의 인공적인 빛, 정교하게 재현된 고도(古都)의 안개 낀 골목, 그리고 약간은 낯선 표정의 주인공들. 2026년, 중국 공중파 황금시간대에서 완연한 AI 장편 드라마가 정식 편성됐다. 방송가는 술렁였고, 시청자 역시 처음엔 조금 망설였다. 과연 이 실험은 문화생태계를 흔드는 변화일까, 흐르는 시간 속 한순간의 이색 현상에 불과할까.
인터넷과 SNS에선 처음부터 화제였다. AI가 각본, 연출, 심지어 주연배우의 얼굴과 목소리까지 창조해낸다니. 자칫 단순 반복적이거나 기계적인 분위기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상 영상을 보면 묘하게 현실과 교차하는 양가적 감상이 번진다. 중국 자체 개발 대형 AI모델들은 최근 몇 년간 미디어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선 실제 배우·작가·감독이 한데 모여 만든 화려한 K-드라마류의 성취와 견주며 수차례 비교당하기도 했다. 드디어, 한껏 세공된 AI 기술이 극본과 연기, 미장센까지 아우르는 장편 서사로 등장했다. 제목부터 대사, 풍경, 인물의 미묘한 감정선까지 모두 알고리즘을 타고 흘러간다.
황금시간대 진출은 단순한 실험으로만 해석하기 어렵다. 새 드라마 편성 첫 주, 중국에서는 라이브 커뮤니티와 리뷰 창이 사방에서 열렸다. 화려한 CG와 AI가 뽑은 고증 풍경은 어느새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흐릿하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배경만 봐도 시간여행하는 느낌”이라거나, “진짜 배우인지 종종 헷갈린다”고 감탄하거나 불만을 표한다. 또 누군가는 “알고리즘이 만든 멜로는 촉촉한데, 이상하게 쓸쓸한 정서가 있다”며 AI 특유의 무표정과 인위성마저 감성적으로 해석한다. 이런 미묘한 감상의 층위는,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냉정한 질감과 동시에 컴퓨터는 아직 완전히 모방하지 못한 감정의 틈을 기묘하게 아우른다.
중국 미디어산업의 AI 활용을 이야기하며, 글로벌 트렌드와의 차이점도 곱씹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유럽, 일본은 AI를 활용한 예능, 헤드라인 뉴스, 애니메이션 등의 영역에서 점진적으로 보수적인 접근을 택해왔다. 반면, 중국은 정책적 지원과 거대 유저풀의 실험성을 발판 삼아, 콘텐츠 산업마저 실시간 변화를 받아들인 듯하다. 드라마 한 편의 출발에는 수백 명의 크리에이터가 들어가지만, AI는 누적 빅데이터와 사용자 반응까지 빠르게 흡수해낸다. 드라마의 반전 결말이 실제 시청자 반응에 맞춰 실시간 수정된다는 루머까지 돈다. 기술과 감성의 경계, 데이터와 창작의 상호작용, 그리고 시청 경험의 주체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바로 여기서 펼쳐진다.
작은 화면 너머의 배우들은 섬세한 감정선을 그리려 애를 쓴다. 그러나 화면 속 어느 대화는 갑자기 낯설다. 표정의 미세한 일그러짐, 타이밍이 어딘지 어색한 미소. 시청자들은 금세 캐치한다. 인간 배우가 연기한 깊이와 미묘하게는 다르다. 이 낯선 충돌이 오히려 시청 경험을 더 생생하게 만든다. 혹자는 “AI 드라마 속 인물들은 마치 반복되는 꿈속 인물 같다”고, 또 다른 이는 “이 새로운 문법은 인간성에 대한 질문 그 자체”라고 표현한다. 드라마 내내 부드러운 빛과, 데이터로 결정된 대사들, 그리고 음악마저 AI가 조합한 소리결이 화면 안팎을 장식한다. 경험치 못한 익숙함과 이질감이 동시에 파도친다.
AI 드라마의 사회적 함의 또한 거대하다. 방송 제작 현장에선 인간 창작자의 역할 변화가 불가피하다. 새로운 스토리를 기획하려는 작가, 연기 경력을 겨우 쌓아가는 배우 등에게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미래다. 누군가는 문화다양성과 창작자 생태계 붕괴를, 누군가는 효율성 혁신과 새로운 콘텐츠 다양성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중국 현지의 감상평도 같다. 할머니부터 대학생까지 세대별 호기심, 불안감이 분분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누구도 이 흐름을 쉽게 거부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음 시즌, AI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또 어디까지 닿을까. 인간이 만든 이야기, AI가 짜는 이야기 모두 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화면 앞에 앉아 드라마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익숙하고도 낯선 도시를 저녁 산책하는 감정이 스며든다. 마지막 자막이 흘러가도 마음속 풍경은 오래 남는다. 이 작은 변화가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하고, 시대가 허용한 새로운 예술의 진화를 관객이 함께 목격하게 한다.
남은 숙제도 있다. AI가 창조한 감정과 인간의 감각, 그 중간 어딘가에서 앞으로 이야기들의 무게 중심은 어떻게 이동할까. 중국발 AI 드라마의 편성은 단지 기술진보 축하가 아니다. 예술과 경험, 그리고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새로운 질문이 울려 퍼진다. 인간의 감동과 기계의 창조가 만나는 자리. 가을밤, 낯선 빛과 소리의 집을 잠시 산책해본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