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AI정책, 사공 너무 많다…커지는 ‘예산 분산’ 우려

2026년 하반기, 국내 인공지능(AI) 정책의 운영 방식과 관련한 혼란과 효율성 저하에 대한 우려가 산업계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다. 최근 정부 및 여러 부처, 산하 공공기관들이 저마다 AI 관련 신사업, 인재 양성, 벤처 투자, 데이터 구축 등 중복된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면서 관련 예산이 분산되고 정책 추진의 방향성도 모호해진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중소벤처기업부, 심지어 일부 지자체까지 AI 육성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사업간 경계는 모호해졌다. 이에 따라 AI 생태계 활성화라는 국가 차원의 목표 달성에 오히려 역행할 수 있다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AI 정책은 플랫폼 산업 활성화, 산업 내 인력 확보,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 핵심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예산과 자원 배분 단계에서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례로 2026년 상반기 기준, 관련 예산은 2조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지만, 실제 한 프로젝트 안에 여러 부처가 별도의 책임을 주장하고 세부 정책 시행 기관이 난립함에 따라, 지원 받는 기업 및 개발자들은 행정 절차의 복잡함과 컨설팅의 난이도 증가, 일부 중복 투자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이러한 다중 사공(부처 및 기관)의 정책 집행 체계는 ‘혁신’이라는 명분 하에 오히려 국가 역량의 비효율적 소진을 야기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동일한 현상은 글로벌 주요국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은 AI R&D 예산과 지원 체계를 국방, 산업, 대학 등으로 기능별 일원화하여 대형화된 혁신 프로젝트 추진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유럽연합(EU) 또한 범국가적 조정 컨트롤타워 모델을 통해 예산 할당과 규제, 인재 정책을 통합 관리한다. 반면, 한국은 부처간 협의 중심, 담당 범위와 역할 혼재,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산업계 내 대기업과 스타트업 역시 ‘누가, 어디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지원을 받을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를 잇달아 내놓고 있으며, 국내 제조업계 내 디지털 전환의 체감 속도도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정책 신뢰성 측면에서 반복되는 예산 분산과 중복 사업 구조는 기업의 중장기 투자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2026년 기준, 스마트 팩토리, AI 반도체, 로봇 자동화 등에서 정부와 산하기관의 지원 사업이 수십 개 각각 운영되고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복수 신청’이 일종의 리스크 분산이 되는 모순적 상황까지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예산 활용의 낭비, 비정상적 프로젝트 연장, 혁신 성과의 분산(분할 성과 부각) 현상이 동반된다. 글로벌 AI 경쟁이 점점 더 속도전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국내 정책의 다중화된 루트는 오히려 사업 기회의 ‘비효율적 증식’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정책 체계의 복잡성은 국내 AI 핵심 인재 유입 측면에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중복된’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인력들이 훈련을 받지만, 이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비율은 낮다. 담당 기관의 획일적 커리큘럼 설계, 산학협력의 매뉴얼화, 후속 실습 및 고용 연계의 느슨함 등 현실적인 문제점이 누적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예산 중복과 분산이 해결되지 않으면, AI 인재 정책에서 ‘양적 확대’는 있으나 ‘질적 도약’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산업 현장의 중론이다.

정부가 ‘AI 초강국’을 표방하며 대대적인 투자와 규제 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정책의 실질적 집행 단계에서는 이미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2027년 국가 AI 기본계획에서도 새롭게 추가된 단위 사업이 기존 사업과 충돌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 부처 내 상호견제 강한 구조에서 적극성보다 할당 예산 소진에 집중한다는 내부 평가까지 나온다. 기업의 성장 전략 차원에서는 예산 통합과 사업 실행 주체 일원화, 성과 책임의 명확화가 시급히 요구된다. 일부 산업계·학계 전문가들은 이미 AI 정책 총괄위원회 신설이나, 예산 자율도-투명성을 강화하는 법적 장치 마련 필요성을 강조한다.

AI·자동차·제조업 융합의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 속에서, 낭비되는 정책 자원과 중복성에서는 탈피해야 한다. 현장 경험 중심의 의사결정, 글로벌 산업 구조와의 벤치마킹, 정치적 입김의 최소화가 절실하다. 누구의 몫도 아닌 국가 미래 전략의 균형 잡힌 추진체계가 확립될 때 비로소 예산 대 예산이 아닌, 혁신 대 혁신의 성과만 남길 수 있다. — 서하준 ([email protected])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