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보수진영의 시험대에 던진 ‘탄핵의 강’—총선 승리의 조건을 묻다
2026년 9월 15일, 보수진영에서 오랜 기간 고질적으로 반복된 문제 — 이념적 진영의 경직화와 리더십 방향성 논란 — 이 다시 한 번 표면화됐다.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이자 주요 정치적 행보마다 ‘합리적 보수’의 상징이었던 유승민 전 의원이 “우경화된 지도부로는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그가 던진 화두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개인 입장 의 표출이 아니라, 보수진영 전체의 트라우마이자, 한국 정치 현대사의 한 횡단면을 드러낸다.
유승민의 발언은 지난 10년간의 정치사를 관통하는 핵심적 상징어 두 가지 — 우경화와 탄핵 — 를 치밀하게 압축한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 전신 정당들은 내부 분열·재결집을 거치면서도 ‘탄핵 책임론’과 ‘지속적 우경화’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다. 탄핵 이후 계파 갈등, 인적쇄신 무산, 청년·중도층 이탈 현상 등은 이제 더 이상 한 계파의 문제가 아닌 진영 존립 자체의 문제로 번진 상황이다. 2024년 총선 패배와 2025년 보궐선거에서 층층이 드러난 민심 이반은, 단순한 선거 전략 실패라기보단, 보수정치 내부의 혁신 부재와 기득권 구조의 고착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유승민이 문제 삼은 ‘우경화된 지도부’라는 평가는, 최근 정진석 대표 체제가 공고해지고, 당내 극우적 언설과 정책노선이 보수정당의 주류 담론으로 자리잡는 현상에 대한 뼈아픈 자기비판이다. 이러한 흐름은 2025년 이후, 통합보수 대표 경선, 외교안보 노선 이슈, 대북강경·반중기조 강화와 맞물리며 2030세대와 수도권 유권자들의 지속적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최근 5년간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의 35% 이상이 “혁신 의지 결여”, “합리적 보수 가치 실종”을 이유로 당을 지지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탄핵 당시 탈당파 유입과 재합류가 반복됐으나, 해당 세력의 ‘용납 불가’ 태도와 극단적 이념 드라이브로 근본적인 개편은 이뤄지지 못했다.
한편, ‘탄핵의 강’이라는 은유는 더 깊은 문제를 내포한다. 이것은 야당이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지나친 사법 리스크’나, 정치 보복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물론, 보수진영 스스로 과거와 결별하지 못하고 ‘합리적 기대’를 담보할 세대교체에 실패해왔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동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반복되는 ‘과거사 청산 논쟁’의 표본적 구조 — 일본의 전후 책임론과 내부보수파 분열, 대만 국민당의 신세대 탈피 논쟁 등 — 과 맞닿아 있다. 지정학적으로, 급변하는 미중 대립 구도 속에서 한국 보수가 국제질서 재편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는 구조적 약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반복되는 우경화 논란은 단순한 이념적 구호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위기와 안보환경 변화가 맞물린 국제질서의 변곡점에서, 국내 주류정당의 경쟁력이란 과거와 달리 ‘포용력 있는 리더십’과 ‘합리적 세대교체’로 집약된다. 보수진영이 “강을 건너야” 하는 이유 역시, 더 이상 탄핵·과거사 논쟁이나 내부 적대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2020년대 글로벌 보수정당들이 직면한 위기 — 청년층 이탈, 외연확대 실패, 유권자 다원화 — 에 자율적 전략을 도출하는 데 방점이 찍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외교 무대에서 신뢰받는 파트너가 되기 위한 가치는, 단일대오 중심주의나 구시대 이념화된 노선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실제로 독일 기민련, 영국 보수당이 이민·기후·안보 등에서 유연성과 통합성을 보여주며 재집권에 성공하는 사례는, 오늘날 한국 보수진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2030 청년층과 수도권, 중산층 유권자들이 보수진영에 등을 돌리는 근본 원인에 대한 진중한 분석과 반성이 절실하다. 유승민의 경고처럼, ‘탄핵의 강’은 단순한 과거사 극복이 아니라, 보수정치 전반이 구조변화와 미래전략에 나아가려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 이념 대결 이익에 묶여있는 이른바 ‘수구권력’과, 변화를 지향하는 실용정치 지향 세력 간의 주도권 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정치권 전체가 이 사안에 소모적 표면논쟁을 넘어선 미래지향적 해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거대양당 중심제 자체의 존립 근거마저 흔들릴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 현대 정치의 동력이 좌우 진영 대립에서 점차 국민 주도 복합정치로 전환되는 오늘, 보수진영이 스스로 내건 ‘혁신과 통합’의 구호가 실질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을 기점으로 보수진영 재편은 한 차례 격랑의 시기로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민심은 표면적 사과, 인적 쇄신이 아닌 근본적 변화와 국제적 통찰력, 미래세대에 대한 포용을 주문하고 있다. 힘의 논리만으로 세대와 계층의 다양성을 흡수하지 못하는 리더십은, 변화하는 국제사회와 빠르게 진화하는 지구촌 민심의 파도를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오지훈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