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컬처 픽] 같이 사는 프로그램, 우리가 마주한 진짜 모습

최근 국내 방송가에서는 ‘같이 사는 것’을 전면에 내세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여러 채널을 통해 시청자와 호흡하고 있다. 옆집과 이웃, 혹은 모르는 이들과 어색하게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은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은 포맷이지만, 다시 한 번 그 중력권 속에 들어온 것만큼은 자명한 현실이다. 해당 기사에서 제기된 논점은, 이와 같은 동거 콘셉트 예능이 오늘날 무엇을, 또 누구를 보여주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에 관한 진단이다. 김헌식 평론가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 그 배경에 놓인 한국 사회의 ‘공동체 피로’와 ‘개인화 시대’의 함정을 밀도 있게 짚는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의 의미는 긴 시간 동안 변화와 개혁의 대상이었으나, 2020년대 중반에 들어서 더욱 복잡해졌다. 1인 가구 비율이 높아지고, 이웃과의 단절, 혈연 및 지연 공동체의 해체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함께 살기’를 미디어를 통해 모색한다. 여기서 방송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와 마주하게 한다. 시청자는 누군가의 일상을 스크린으로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필요한 만큼의 상상력을 동원한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최근 방영된 여러 동거·공생 예능들은 ‘다름의 조우’라는 상황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출연자 간 대화의 불편함, 불일치, 타협의 과정을 지나치게 희화화하거나 소비한다. 예능의 특성은 갈등과 조화를 피할 수 없지만, 리얼리티보다는 각본에 의존하는 장면 연출이 더 잦아지면서, 출연자의 진짜 목소리와 감정은 점차 희미해진다. 한국형 ‘관찰 예능’의 내부 동력은 점점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온 주요 메시지는 ‘타인과의 동행에서 느끼는 피로’와 ‘일상의 적막’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명확히 체감하게 되는 점은, 세대 간 혹은 계층 간 차이가 동거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있지 않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이미 개인화와 불신의 시대를 복원 불가하게 지난 뒤라는 점이다. 여러 관찰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서로의 사생활, 삶의 방식, 심지어 휴식의 형태까지 충돌한다. 극복의 이름으로 제시하는 ‘합의점’이나 ‘작은 약속’은, 오히려 충돌의 본질을 희석하거나 외면하기 일쑤다. 시청자는 출연자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과도하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지만, 배려와 이해, 그리고 사회적 긴장감의 최소치가 모조리 컨텐츠화된 순간, 남는 것은 거대한 ‘망설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 인물의 서사에 한 번 더 천착해 보면 각자의 취약함과 불안이 화면에서 가끔씩 진솔하게 드러난다. 혼자임을 즐기고 살아왔던 한 인물은 낯선 타인의 출현 앞에 애써 쿨한 태도를 흉내 내지만, 이내 작은 불편함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 예능 제작진이 시청률 혹은 ‘화제성’에 급급한 나머지 ‘진짜 표정’을 곧잘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출연자 리스트업, 시즌 변화, 편집 방향, 나레이션 선정 등 제작진이 쌓아온 수많은 선택과 변주는 이제 ‘익숙한 비유’를 넘어 내러티브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여야 한다. 구체적 상황마다 사람들의 삶을 ‘상품’이나 ‘소비재’로 다루지 않고, 진짜 목소리와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미디어가 지녀야 할 혁신적 자세이다.

비슷한 포맷이 이미 포화상태로 접어든 2026년, 이류적인 갈등 유발 대사 혹은 감동의 공식으로 후반부를 채우는 관행은 시청자의 피로도를 높인다. 콘텐츠 과잉사회에서, 우리가 ‘진짜’를 확인하려 할 때마다 텔레비전 안의 동거는 자칫 공허해지기 쉽다. 이 지점에서 기사 필자는 예능이 가진 소통의 가능성을 묻는다. 공동체의 퇴색, 불안의 일상화, 혹은 낯섦에 대처하는 방식까지,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임계점을 넘은 장르에 새로운 생기를 불러넣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이웃이 물리적으로 공간을 공유한다고 해서, 곧바로 <같이 산다>는 의미로 환원하는 건 착각이라는 점,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 오래 기억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결론은 소통의 진정성이다. 동거라는 소재는 결국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현실을 반영하며, 미디어가 여전히 사회의 거울임을 환기한다.

방송이 모방하지 못할 일상의 쓸쓸함, 그리고 이름 모를 타인에 대한 미묘한 동질감. 그 균열의 지점이, 오늘 한국 사회가 프로그램을 통해 진짜 마주해야 할 ‘같이 산다’의 의미다.

— 이상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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