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현실 사이, 2026 F/W 트렌드는 두 세계를 오간다
촉촉한 가을비처럼 차분히 내려앉은 2026 F/W 패션 위크. 이번 시즌 런웨이는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말 그대로 엘레강스한 파동이 일렁였다. 베이식과 퓨처리스틱, 중세와 디지털, 몽환적인 로맨스와 실루엣의 강인함이 서로 뒤엉켜 패션의 새로운 룰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가장 눈에 띈 건 바로 ‘판타지 코드’의 귀환. 마치 오래된 동화책 한 장을 떠올리게 하는 벨벳 케이프, 금빛 자수와 실버 액세서리, 심지어 파격적인 크라운 헤드피스까지. 구찌와 딩크레인은 유기적인 드레이핑과 뾰족 슈즈, 빛나는 험브록스를 더해 현실 너머에 닿은 듯한 실루엣을 선보였다. 하지만 현실에 발붙인 실용성 역시 놓치지 않았다. 네오클래식 아우터, 버뮤다 팬츠, 오버사이즈 셔츠가 도심의 바쁜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는 편안한 감각을 연출했다. 신발라인에서는 다각형 굽의 부츠와 날렵한 메리제인, 톡특한 프린트 플랫슈즈가 각 브랜드별로 조화롭게 등장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색감에서는 선명한 컬러와 딥한 다크톤이 공존하며, 특유의 묵직함을 주면서도 절제된 화려함이 흐른다. 올리브 그린, 네이비, 보르도 레드 등의 클래식한 톤 위에, 시어한 라벤더나 라임 옐로우가 그믈망처럼 자리잡는다. 여기에 텍스처 플레이도 한몫했다. 레더, 새틴과 시퀸, 러플 디테일, 직조된 크리스털 장식이 트렌드의 결정적 한 방을 날린 것. 이런 소재감은 요즘 핫한 Y2K 바이브와 신인 디자이너군의 유니크한 감각에 힘입어 더욱 대담하게 변주됐다. 하이엔드 브랜드에선 믹스매치된 유틸리티 룩이나, 스포티-락 요소가 자연스럽게 섞여있었고, 하이브리드 웨어 역시 스테디셀러로 안착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룩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신선함이 있었고, 탑 모델들은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변주 안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각인시키는 듯했다.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패션피플들이 이번 시즌 룩북을 따라한 이유다.
메이크업과 헤어 역시 이중적 분위기를 강조한다. 투명한 글로시 스킨 위에, 반짝이는 슬릭 헤어. 미러 아이섀도우와 보석 같은 헤어핀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환상’과 ‘실용’이 맞닿아 있는 것, 지금 스트리트 패션에 즉시 반영되고 있는 현상이다. 더 흥미로운 건, 전 세계 주요 도시들(서울, 파리, 뉴욕, 런던)이 각기 다르게 이 키워드를 해석한다는 점. 서울은 믹스매치에 스포티즘이 더 도드라지고, 파리는 무드와 디테일에 더 집중한다. 뉴욕쇼는 영상미와 데일리웨어 결합을, 런던은 과감한 패턴과 실험정신에 방점을 찍으며 올해 F/W 시즌의 트렌드’를 글로벌로 리포트했다.
해외 주요 매거진들과 인터내셔널 스타일 저널리스트들의 분석 역시 전체적인 맥락을 뒷받침한다. 『보그』 프랑스판은 “현실과 판타지의 공존, 기술과 감성의 컬래버레이션이 올해 F/W의 핵심”이라며, 단순히 ‘화려함’이 아니라 개개인이 경험하는 현실적 라이프와 몽환적 상상의 융합이 진짜 트렌드임을 강조한다. 『WWD』와 『하입비스트』, 『더 드롭』 등이 ‘하이브리드 연출력’, ‘뉴 레디투웨어’, ‘판타지-크러쉬’ 키워드를 내세운 것도 거의 일치한다. 이는 곧 브랜드들이 더이상 전통이나 과감함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요소를 융합해 팬들의 넓은 취향을 공존시키는 방향으로 변화 중이라는 증거. 또 Z세대를 겨냥한 디지털 3D 피스, AI 기반 스타일 추천, 메타버스 가상 피팅 등 ‘리얼+가상’ 접목 마케팅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도 놓치면 안 될 뉴스포인트다.
흥미롭게도,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이번 F/W는 한층 자유분방하고 경계 파괴적이다.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뉴트럴 무드, 다양한 체형을 고려한 편안한 핏, 색상 믹스에 대한 거부감 DOWN, DIY나 시그니처 소품 레이어드 유행이 자연스럽게 번지고 있다. 심지어 스트리트 브랜드와 하이패션이 커스텀 플레이, 리얼웨이-런웨이 합체에 점점 더 눈을 뜨면서 일상 패션과 아방가르드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링, 스마트 웨어러블, 패치워크 스카프, 애니멀 텍스처의 오버볼륨 백 등 신상 잇 아이템도 모두 이런 흐름 속에서 나왔다.
결국, 2026년 가을/겨울 패션은 ‘구분 없음’의 시대다. 자신만의 판타지를 패션으로 투영하거나, 현실적 실용에 트렌디한 감각을 한 스푼 더하면 아무도 틀리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무드를 자유롭게 오갈 줄 아는 것, 그것이 진짜 스타일리시함의 조건. 이번 시즌, ‘경계 없는 변화’와 ‘상상력의 실현’이란 키워드를 단 하나의 룩으로 완성할 수 있다는 것. 그게 2026년 F/W 트렌드의 결정타다.
— 오라희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