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 고등교육 이수율 71.1%…빛나는 1위, 하지만 남겨진 숙제들

하이데거는 ‘존재의 집’이 언어라 했던가. 오늘, 우리 청년들이 속한 사회라는 집을 들여다본다. 세계 1위, 71.1%. 지난해 한국 청년층(25~3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무려 71.1%라는 발표가 나왔다. OECD 38개 회원국 평균(48.8%)을 압도적으로 뛰어넘은 성과다. 2위 캐나다(66.7%)도, 그 뒤를 잇는 일본·룩셈부르크 등도 한참 뒤처진다. 표면적으로는 그 자체로 대단한 결과다. 학부모 김유정(46) 씨는 “내 아들도 대학을 졸업하는 게 마치 당연한 과정이 된 것 같다”며 주변의 공기를 전했다. 1990년대 ‘대학 진학은 곧 성공’이라는 신념이 2020년대에는 ‘대학은 기본, 이후가 문제’가 된 시대.

사람에게는 늘 맥락이 따라붙는다. ‘교육열’이라는 단어, 낯익다 못해 굳어지는 통념 위, 그 열정이 성과로 읽힌 순간이다. 김영준(24) 씨는 “주변 동기들, 절반도 넘게 갭이어 없이 대학을 가고 대학원에 도전, 어릴 때부터 각종 자격증까지 준비했어요”라 말한다. 부모 세대의 교육투자, 사교육 시장의 팽창, 대학 진학을 압박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 여러 겹의 이야기가 한데 섞였다. 그런데, 이 대단한 성취 뒤편에는 분명 짙은 그늘도 드리워진다.

단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높다고 해서 곧바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생 박정현(22) 씨는 “졸업장을 손에 쥐고도 취업은 다른 세상 얘기 같아요. 이수율이 높은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닌 듯” 하고 말한다. 실제 청년 실업률과 ‘전공 무관 취업률’이 또 하나의 문제로 고개를 든다. 한 친구는 토목공학을 공부했지만, 식당 아르바이트를 2년째 이어가고 있다. OECD 내에서도 고등교육 이수 이후 노동시장과 일자리 만족도 지표를 함께 볼 필요를 제기한다. 단순 ‘교육’의 통계가 아니라, 교육의 결과로서 ‘삶의 퀄리티’에 시선이 머문다.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 그 사이에서 긴장이 만들어지는 모습도 흥미롭다. 오늘의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옆집 친구처럼 스타트업을 시작하거나, 전혀 무관한 직종에 뛰어드는 케이스는 이미 상수다. 김소연(27) 씨는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 실제 사회에서는 큰 도움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아 고민이 많았다”는 진심어린 속내를 내비친다. 여기서 다시 던질 수밖에, 이수율 1위가 곧 국제 경쟁력 1위를 의미할까? 캐나다, 핀란드, 일본처럼 청년들이 자국 특성에 맞는 다양한 길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도록 촘촘히 사회적 보호막이 작동하는지 묻는다.

교육은 사람을 움직인다. 사람의 움직임은 곧 사회의 흐름을 바꾼다. 하지만 모든 변화 뒤에는, 어딘가 뒤처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학비 부담, 수도권·지방 간 교육 격차, 실용학문과 교양학문의 편중 등은 아직 그대로다. 사회복지관에서 만난 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의성(25) 씨는 “대졸이 취업에 도움 안 되는 분위기라 더 불안하다. 그럴 거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기술을 익혔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한다. 고학력 청년들의 불안감, 지나친 스펙 쌓기가 개인 역량 성장에 진정 얼마만큼 기여하는지, 우리는 수치만큼 깊은 고민과 제도를 덧칠했는가.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국내 고등교육 이수율에는 전례 없는 ‘속도’가 붙는다. 1990년대 30%대였던 수치가 30년 만에 두 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었다. OECD가 매해 ‘교육지표’를 발표할 때마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지만, 취업 후 노동시장과 청년복지, 삶의 다양성은 덜 조명된다. 유럽 각국의 청년 배려시스템, 대학-기업 연계형 인턴십, 지역 거점 일자리 등 다양한 정책 모델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부다.

교육은 세대 간 사다리인가, 혹은 또 다른 경쟁의 벽인가. 수치에 가려진 무수한 얼굴들, 취업을 준비하며 ‘좌절’을 이야기한 청년, 대학 대신 다른 길에 도전했다가 다시 돌아온 취·창업 준비생들, 그리고 그 가족과 교사까지. 한 사람, 한 사연이 이어지는 현장을 진정성 있게 바라볼 때, 단순 랭킹 그 자체로 의미를 환원하지 않을 수 있다. 고등교육 이수율 1위, 자랑스럽지만 여전히 묻고 싶은 질문이 많다.

청년 만나는 것, 그 이야기를 듣는 것, 그 자체로 사회를 위한 성찰의 첫걸음이다. 오늘도 교정 어딘가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이 있다. 오히려 그 고민을 드러낼 때, 우리는 우리 교육이 내일 더 단단한 집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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