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비] 3040 소비 트렌드…아끼고, 따지고, 신념으로 고른다 ②

10월의 한 끄트머리, 나는 강남의 오래된 골목길을 걷는다. 집 근처 소소한 커피집에 들르려던 길인데, 문득 쇼윈도를 가득 채운 ‘제로웨이스트’ 사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색이 바랜 진열대 위에 솜씨 좋은 손길들이 놓아둔 에코백과 텀블러, 플라스틱 뚜껑이 없는 종이컵들. 눈을 돌려 건너편 한적한 브런치 카페로 들어가 보니 메뉴판 곳곳마다 “윤리적 소비”와 “친환경 재료”라는 안내가 꽂혀 있다. 점심 무렵, 대여카페를 자주 오간다는 30대 초반 S씨는 오늘도 텀블러를 손에 쥔다. “별 게 다 비싸져서, 이젠 원두 커피도 따져보고 사요. 신념이랄까? 그냥 싸다는 이유로 사진 않죠.” S씨의 말에는 생경함이 없다. 그의 뒷모습에는 각자의 삶이 묻은 실천들이 포개어진다.

내가 종종 들르는 성수동의 식재료 마켓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만난다. 한 켠에는 비건 간식부터 저탄소 인증을 받은 농산물, 리필 가능한 올리브유 바 등, 손님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거 원산지 어디에요?” “포장지 친환경 맞나요?” 30-40대 소비자들은 이제 가격표 하나만 보는 시대를 지나왔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친구들도, 서서히 취향을 넘어 신념으로까지 소비 습관을 바꿔간다고 고백한다. 우리 사회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3040세대의 소비 방식은 단순히 경제 논리를 넘어, 각자가 품은 내면의 가치와 기준을 반영한다. “가성비”와 “합리성”만 따지던 시대에서, 이제는 마음과 신념까지 담긴 선택이 일상에서 번져나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여러 소비 트렌드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이 세대의 소비 행위에는 가족의 행복, 세상에의 작은 영향, 개인의 마음을 지킨다는 의지 등이 얽혀 있다.

친환경부터 윤리적 소비, 그리고 웰빙 지향까지, 이 세대가 소비 공간에서 원하는 것은 그저 값이 싼 상품이 아니다. 일상의 식사조차 조금 더 제대로, 꾸미지 않은 듯 세련된 공간에서 신중히 고른 식재료로 차리려는 마음이 진하다. 편의점 도시락 하나를 고를 때도 ‘라벨’을 꼼꼼히 살피고,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동물복지 표기가 있는 쪽을 기웃거린다. 그 모든 순간의 작은 결심들이 모여 ‘신념 소비’란 키워드로 요약된다. 3040세대의 이런 흐름은 단지 트렌드가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어떤 거대한 사회적 전환의 징표다. 강남구에 사는 39살 P씨의 냉장고 문에는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 참여 중”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저한테는 사소해도, 이 세월엔 나도 변화에 동참하고 싶더라고요.” 그 말이 따로 대의를 외치는 것 같지 않았지만, 무심한 표정 뒤로 잔잔한 실천의 울림이 퍼진다.

이 변화의 중심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를 고려하는 시선이 있다. 한때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즉흥적이고 화려한 소비가 각광받던 시기와 비교하면, 지금의 3040세대는 한결 더 침착하면서도 따뜻하다. 자신을 아끼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 속에서 최소한의 균형을 찾아가는 모습.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나를 설명하는 요소가 되었고, 취향을 넘어 일상의 의지가 깃든 선택으로 이어진다. 코로나19 이후 공간과 사람에 대한 시선이 깊어진 것도 이런 흐름에 힘을 더한다. 비대면 쇼핑과 온라인 소비가 늘었지만, 그 안에서도 신념과 경험, 공동체를 향한 결실을 찾으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디지털 세대의 3040은 ‘검색의 달인’이다. 어떤 제품이든 후기와 평점, 친환경 인증서, 생산 과정까지 샅샅이 파헤친다. 남들이 다 아는 핫플레이스 대신, 조용한 동네 카페나 가족 농장에서 산 식재료, 꾸준히 적립되는 환경 마일리지를 찾아나서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이런 세심하고도 따뜻한 소비자가 시장의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방송된 한 라이프스타일 쇼에서도 30대 부부가 “쿠폰 할인”보다 “사회적 가치를 담은 상품”을 처음으로 골랐던 이야기가 화제를 모았다.

여행지에서도 그들의 선택은 다르다. 플라스틱 없는 숙소, 지역 소상공인과 협업하는 로컬마켓, 여행 내내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챌린지에 참여하는 방식 등. 환경 보호를 넘어, 지역과 사람에게 긍정적 영향이 닿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다. 누군가는 “요즘 젊은 층은 자기만족에만 빠졌다”고 바라보지만, 실제로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조용한 실천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국갤럽과 컨슈머인사이트의 최근 조사에서도 3040세대 72%가 “소비를 통해 사회변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응답했다는 결과가 인상적이다.

이렇듯 아끼고, 따지고, 신념으로 고르는 3040의 소비는 삶과 세상을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은 작은 소망에서 비롯된다. 편의와 절약을 챙기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진심이 깃든다. 피곤한 경기 한파 속에서도, 각자의 일상에 따뜻한 빛을 더하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작은 신념과 실천들인 것 같다. 오늘, 이 골목의 한 구석을 밝히는 작은 매장 불빛처럼.

— 하예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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