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롭고 아름다운 물음, 오페라 ‘코스모스를 죽였다’의 밤
10월의 한복판, 대전 예술의 향연 위로 문학의 향기가 더해진다. 윤희일 작가의 소설 『코스모스를 죽였다』가 뮤즈의 옷을 입고 오페라 무대 위에 오른다. 이 흔치 않은 조합은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대전의 가을 밤을 은밀하게 개화시킨다. 창백한 달빛과 잔잔한 오케스트라의 숨결 사이, 문학이 남긴 흔적이 어떻게 노래가 되었는지, 관객의 유리창에 살며시 입김을 그린다.
윤희일 작가의 원작은 바람 끝에서 흔들리는 코스모스처럼 섬세하고 온도차가 있는 이야기였다. 이번 무대화에서는 그 언어의 색감이 악보의 시간으로 번안된다. 사랑과 상실, 인간이 세상에 묻는 거대한 물음, 그리고 아름다움에의 영원한 탐닉. 소설의 문장들은 이제 가수들의 떨림과 지휘자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며, 대전의 가을 공기를 더 맑게 걸러낸다. 20세기 한국 근대사의 상흔을 반추하며, 한 개인의 내면에서 우주적 슬픔에 이르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원작처럼, 오페라 역시 극단적인 감정의 굴곡에 방점이 찍힌다.
오페라 무대는 늘 지나간 것들과 지금 살아 숨쉬는 것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번 무대 역시 우리에게 어떤 구체적인 정답이나 해답을 던지진 않는다. 그렇다고 심각한 자기 연민으로 빠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연약한 인간의 어깨 위를 스치는 바람, 망가진 사랑의 빈자리, 꽃잎 하나 흔들릴 때 속삭이는 그 감정선을 노래로 흘려보낸다. 이야기와 음악, 시와 회한, 겹겹의 의미 속에 문화부 기자로서 나는 그 일부가 되어 속삭이고 싶다. 이 작품이 조심스레 묻는 것들—“우리는 왜 지고, 또 피는가”—그 질문에 새삼 귀가 기울여진다.
다른 매체들도 이 공연에 주목하고 있다. 서울, 부산 등지의 공연에 비해 대전이라는 중부의 문화 지형에서 이례적으로 원작소설을 오페라로 해석하는 시도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예술의 전 초월적 교차지점에서, 오페라의 화려함과 현대소설의 서정이 부딪힐 때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지역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이미 티켓 예매는 초반부터 빠르게 이뤄졌고, 문학과 음악, 연극을 아우르는 문화계 인사들 사이에서 “코스모스를 죽였다”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감정의 스펙트럼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또한 이 오페라는 국내 창작오페라의 확장성과 가능성을 다시금 질문한다. 수입 레퍼토리의 반복, 익숙한 고전의 재해석에서 벗어나,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오페라로 탄생하는 순간이야말로 문화예술계의 미래가 밝혀지는 순간이 아닐까. 과연 관객은 무대 위에서 몇 겹의 의미와 마주칠 수 있을까? 무작정 견고한 음악어휘 속을 해집는 대신, 숨겨진 틈새와 미세한 감정선을 따라가 볼 용기가 우리에겐 있는가?
실제로 ‘코스모스를 죽였다’의 오페라화는 단순한 축제 이상의 함의를 가졌다. 2026년 대한민국, 각박한 일상과 대체불가한 감성의 공간이 자꾸만 멀어져가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책장에서 소설의 문장을 꺼내 무대 위로 옮기려 애써왔다. 오페라의 스테이지 위에 선 등장인물들은 거대한 운명 앞에서 흔들리지만, 좌석에 앉은 관객 모두가 저마다의 코스모스이기도 하다. 지금, 이 밤, 무대 위에서는 실제의 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에서 피고 지는 마음의 꽃을 노래한다. 이 공연은 단순한 작품의 재현 그 이상. 세상에 내몰린 감정들이 음악과 이야기의 힘으로 한 번 더 살아 숨쉬는 그 경험을 관객에게 건넨다.
결국 이 문화적 실험은, 낡고 새로움이 뒤섞이는 대전이라는 도시처럼 변화와 위안을 동시에 품는다. 한때 사랑했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예술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길 바라는 바람을 조용히 불러본다. 『코스모스를 죽였다』를 오페라라는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이번 밤, 문화란 결국 짧은 계절처럼 아쉽고, 그리운 무언가임을 실감케 한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