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근, 식탁 위에서 다시 만나는 계절의 발견
아침 식탁에 놓인 반찬 그릇의 연근조림, 어느새 익숙해진 식감이지만 어쩌면 반복되는 맛에 한숨이 새어나온다. ‘연근조림 지겨워’라는 투덜거림은 우리 모두의 봄과 가을 밥상에서 한 번쯤은 스쳐간 일상의 작은 해프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온 제철 연근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에 더 깊게 귀를 기울여 보고 싶었다. 단순히 조려 내는 조림이 아닌, 그 뿌리와 줄기, 그리고 연근의 본연의 맛을 살려 새로운 밥도둑 반찬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연근이란, 오랜 세월 우리 곁에 머물던 식재료다. 연잎이 드리운 연못가, 땅속 깊이 자리잡은 연근의 맥락 위에는 사계절의 숨소리와 수많은 가정의 기억이 얇은 층층 속살에 담겨 있다. 아삭한 식감과 은근한 단맛, 여기에 특유의 흙내음이 어우러져 투박하면서도 온화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일까. 연근조림 하나를 준비하는 과정에는 엄마의 손끝을 닮은 정성, 그리고 익숙한 풍경이 반복된다. 하지만 점점 단순한 조림에 지쳐 가는 입맛을 위해 색다른 길이 열린다.
이번 계절, 신선한 연근을 산뜻하게 즐기는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아무런 조림조차 거부감이 들 때, 차라리 연근의 바스락거리는 생식에 용기를 내보는 것. 어린 연근을 표백하지 않은 그대로 얇게 썰어, 차가운 물에 잠시 담가두었다가 깨끗하게 물기를 제거한다. 여기에 고소함을 더하는 참기름, 흑임자, 그리고 약간의 소금, 깨소금만 뿌려 주면 겉으로는 단아하지만, 입안 가득 퍼지는 포슬한 흙냄새와 생생한 식감이 이색적인 반찬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레시피는 연근 특유의 식이섬유와 영양분, 비타민C가 그대로 살아 있어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간장, 물엿 조림에만 연근을 가둬둘 필요는 더더욱 없다. 최근 SNS와 다양한 푸드 콘텐츠에서도 연근을 활용한 다양한 생요리, 튀김, 샐러드 아이디어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연근을 일단 얇게 저며 찬물에 톡톡 씻어낸 뒤, 테이블 비트나 식초, 꿀 등과 섞어 가벼운 피클로 만들면 식욕을 깨우는 새콤달콤한 반찬이 완성된다. 혹은 감자칩처럼 얇게 잘라 기름에 한 번 바싹 튀겨 내면, 집안 식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고소한 간식으로 변신한다. 연근은 단순한 조림 재료를 넘어 다양한 조리법에 따라 식탁 위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하다.
‘조림은 맛있지만, 식탁에 자주 올라오다 보니 질린다’라는 생각은 한편, 변화와 도전에 대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직접 손질해보면 연근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도톰함, 흐르는 진에서 전해지는 자연의 향, 그리고 칼날이 미끄러질 때 들려오는 독특한 감촉까지, 어느 하나 일상이 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의 순간이다. 생연근 슬라이스에 참기름 한 방울, 신선한 샐러드 채소와 어울려 한 켠에 차려 놓는다면, 언제든 ‘지겨움’이란 단어를 지운 색다른 새로움으로 식탁을 꾸밀 수 있다.
최근 들어 채식과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연근도 색다른 조리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구이나 오븐 베이크로 쫄깃함을 끌어내거나, 가볍게 절여 샐러드에 더할 수도 있다. 일본 식당가에서는 연근을 고추장 소스에 묻혀 작은 타파스 형태로 내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고수와 마늘, 땅콩을 곁들여 매콤한 양념에 버무리고 있다. 우리의 식탁에서 연근의 다채로움을 만날 시간이다.
‘지루한 조림에서 벗어나 새로운 맛을’이라는 기대감은, 사실 가족을 생각하는 이들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쉽게 변신하는 연근 한 조각이 오늘 우리 모두의 새로운 밥도둑이 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이 계절만의 촉촉한 혀끝의 즐거움이 작은 반찬통에 담긴다. 자연이 준 연근이 직접 요리하는 이에게도, 식탁을 마주한 가족에게도 작지만 깊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손가락 끝에 배인 연근 냄새, 그리고 그 냄새와 함께 남아있는 계절의 미소가 이번 가을 밥상 위에서 환하게 퍼진다.
— 하예린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