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논란의 파도를 헤치고 박스오피스 정점에 서다

가을의 시작, 극장가는 예상치 못한 파동에 휩싸였다. 영화 ‘암살자(들)’가 모진 논란과 우려의 목소리 속에서도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거친 바람 앞에서도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관객들의 호기심과 열망이 난무한 논쟁을 뚫고 극장으로 향했다. 도입부부터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영화를 둘러싼 우려는 단순한 흥행의 기쁨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진다. 실제 위협과 불온한 분위기, 그리고 영화를 만든 창작 집단을 겨냥한 신상 공격. 예술의 이름 아래 보호돼야 할 이들의 안전은 이유 없는 혐오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영화 ‘암살자(들)’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단일 장르를 넘어서 우리 문화를 되짚게 만든다.

최근 영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각자의 안전과 자유에 관한 목소리가 분명하다. 영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을 내세운다. 반면, 반대의 시선은 ‘사회적 책임’과 ‘선 넘은 자극’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다. 같은 시공간에 놓인 두 개의 진실, 이 끝없는 줄다리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영화인연대가 일괄된 입장문을 내며 “창작자 개인의 안전 위협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다. 예술에 기대어 위협과 폭력의 논리가 차가운 현실이 된 지금, 그 경계는 마치 흐릿해진 수묵화의 번짐처럼 점점 모호해진다.

‘암살자(들)’이 1위에 오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 자체의 완성도, 혹은 강렬한 이슈몰이? 아니면 대중의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부풀어 오른 결과일까. 여기에 담긴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각종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날선 찬반으로 가득 찼다. 어떤 이는 영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시위에 참여한다. 어떤 이는 ‘궁금하다’는 이유 하나로 티켓을 끊고, 영화관의 불빛 아래 나란히 앉는다. 모두가 목소리를 내지만, 그 다양한 감정선이 실은 서로 맞닿아 있음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동시대 관객들은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그들은 ‘유통되는 예술’에 참여하고 소비하며, 그 자체로 논쟁의 중심에 선다. 누구도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고, 누구도 절대적 가해자가 아닐 수 있다. ‘암살자(들)’이 던진 파장은 끝나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어디까지가 예술인가?’라는 오래된 화두가 다시 계절을 돌고 도는 바람처럼 돌아왔다. 비단 한 편의 영화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견딜지 또 한 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초연한 개봉 첫 주말, 영화관은 비판과 응원, 침묵과 웅성임이 뒤섞였다. 예술은 늘 경계 위에서 길을 찾는다. 실제 개인 신상 공격이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영화계의 오래된 상처를 다시 들췄다. 표현의 자유는 때로 칼날이 두꺼운 방패이기도 하다. 영화 창작자를 둘러싼 신상털이와 위협은 결코 예술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향한 관심은,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회적 존재이고, 때로 무모할 만큼 자유를 갈망하는지 드러낸다.

‘암살자(들)’의 논란은 유행처럼 바삐 번진다. 여러 매체의 분석을 보면, 유사한 논란은 외국에서도 수차례 반복됐다. 사회적 금기를 건드린 내용, 모호한 메시지, 사실에 가까운 연출은 늘 불안과 흥분을 동시에 부른다. 하지만 예술의 울타리는 그 한계와 책임 사이, 보이지 않는 실선을 타며 항상 긴장한다. 유럽과 미국의 일부 영화들은 작품의 문제와 작가의 신변 위협이 연결된 사례도 적지 않다. 문화적 맥락마다 다른 해석과 가치판단이 뒤섞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나쁜 영화’ 혹은 ‘좋은 영화’라는 흑백 논리가 아닌, 그 사이의 풍경으로 우리는 더 오래 머물 수밖에 없다.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오늘이, 진짜 끝이 아니다. ‘암살자(들)’ 본연의 이야기와 감정선을 자유롭게 겨룰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타인의 신상을 들추고 개인의 존엄을 짓밟는 건 그 자격을 박탈하는 일이다. 지난한 논쟁의 끝에서, 우리 문화가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다음 대화의 불씨가 된다. 관객은 극장 안과 밖에서 스스로를 시험한다. 오늘도 예술은 질문을 던지고, 사회는 답을 유예한다.

여기, 조명 아래 서 있는 한 편의 작품이 있다. 논란은 작품에 붙은 그림자 같고, 선택의 권리는 언제나 당신의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으로 극장을 나선 이들, 혹은 아직 망설이는 이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완성한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답 속에서 함께 서 있다. 묻는다, 그리고 늦게라도 성장한다.

— 정다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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