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키즈’ 논란, 공수처 내부와 바깥에서 흘러나온 불신의 목소리
“균형이 무너진 자리에서 한 명 한 명이 감내해야 하는 무거움이 얼마나 큰지, 현장에서 웅크릴 수밖에 없는 이들의 표정을 보며 느낀다.”
12일 국회 법사위 현장, 박은정 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은 한 마디 한 마디를 힘겹게 토해냈다. 그가 꼬집은 건 단순한 인사 논란의 표피가 아니었다. “尹(윤석열) 키즈, 즉 현 정권 인사들이 공수처에 포진해 윤 대통령 및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흐리고 모두를 세탁한다”는 주장. 박 전 차장의 입에서 나온 이말엔 조직에 남아 있는 이들, 그리고 법치주의를 의지처로 삼은 평범한 시민들이 감정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박 전 차장 주장이 사실인지, 아니면 정치적 수사인지 공정한 팩트로만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와 비슷한 목소리는 곳곳에서 들려온다. 실제로 올해 공수처 주요 수사 및 기소 동향 자료, 내부 인사 이동 내역 등을 복수 언론이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최근 공수처 내 검사, 수사관 구성원이 일부 보수·검찰 출신 혹은 정부 친화 인사로 비중이 크게 늘었다. 그 과정에서 내부 갈등·이탈자가 있었다는 증언도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공수처 직원은 “수사 독립성 보장에 대한 신뢰가 내부에서도 무너진다”고 말문을 연다. 실제로 최근 한 달 사이 적잖은 내부자가 “결재 과정에서 압박이 있었다” “외압으로 사건 방향이 뒤틀렸다”는 식의 불만을 표출한 사례도 있다.
강조하고 싶은 건, 이와 맞닿은 구체적 사례들의 맥락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공수처의 ‘민감사건’ 수사는 대폭 축소됐다. 지난해 14건이던 ‘청와대 및 정부 고위직 관련 범죄’ 내사·수사 건수는 올해 상반기 3건에 그쳤다. 내부 보고서 한 켠엔 “핵심 수사기능이 축소돼 직원들 사기마저 꺾인다”는 문장도 가감 없이 남아 있다. 감정의 골이 패인 곳은 현장뿐 아니다. 각종 시민 단체, 공수처 자체 고충센터에 들어온 국민제보 중 ‘정권 입김’ 우려 및 “공수처가 검찰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쓴소리는 2024년 하반기 들어 전년 대비 42% 급증했다.
그러나 모든 조직 변화가 ‘외압’ 한마디로 설명될 수는 없다. 법조계, 시민사회에서 “정치권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대로 수사하라”며 현 정부 인사의 방어막이 필요했다는 반론도 있다. 공수처 설립 취지에 따라, 특정 사안에서의 엄정 수사 실패를 모든 인사로 귀결지으면 오히려 조직이 정쟁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먼지를 걷어내면, 취임 후 인사시스템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게 실무자 분석이다. 1차장과 2차장, 과장 선임 방식은 청문회·심사를 거치고, 형식적으로는 이전과 같은 틀을 유지한다. 그러나 내부 현장은 “형식이 아무리 같아도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다”고 말한다. 사무실에 찾아오는 ‘외부 손님’이 바뀌었고, 회의 테이블의 공기엔 지시나 눈치가 짙게 스며든다고 한다.
공수처의 존재 의미, 그 본질적인 물음이 절로 떠오른다. 권력을 가진 기관이 얼마나 독립적이고, 시민이 체감할 만큼 정의로워질 수 있는가 하는 이 질문은 늘 사건, 정책, 사람을 뒤에 두고 조용히 반복됐다. 이런 현실에서 박은정 전 차장의 발언은 단순한 내부 고발을 넘는다. 조직을 떠난, 혹은 남아 있는 평범한 누군가가 권위에 짓눌려도 ‘입을 닫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는 행위로 비춰진다. 그는 현장 발언 직후 동료들에게 긴 메시지를 보냈다. “두려움에 움츠리지 마라. 그래야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진다.” 그 울림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았다.
지켜야 할 가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 현장의 목소리 안에 있다. “권한이란 것이 언젠가 스스로를 잡아먹는다”는 한 노(老) 검사의 회한을 떠올리게 된다. 권력기관에 부는 미세한 변화마저 현장은 예민하게 감지한다. 공수처 내부와 그 주변을 매일 오가는 평범한 직원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거대한 구조 속에 낀 개개인의 감정과 고민을 읽어야 할 때다. 제도나 구호가 아닌, 사람의 흔들림과 용기가 변화에 진짜 씨앗이 된다.
조직의 무게를 온 삶으로 견디는 이들, 그리고 공수처를 응원하는 시민 모두에게 ‘정의’는 여전히 먼 길이지만, 그 한걸음 한걸음의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는 걸 믿는다.
— 김민재 ([email protected])

